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육성 연설에서 ‘인민제일주의’를 강조하며 국정 운영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신의 권력 정당성을 공고히 하며 체제안정을 설파하는 데 상당 부분을 피력했다. 미국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향후 관계개선 속내를 드러냈다.
◇“미국과 어떤 형태의 전쟁도 상대”=김 제1비서는 연설에서 미국과의 ‘전면전 불사’라는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핵 압박이 고조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제1비서는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미제(미국)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 줄 수 있다”며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의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당당히 선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제는 참혹한 전쟁을 강요했고 빈터 위에서 허리띠를 조이면서 힘들게 복구하면 또 새로운 침략의 위험을 몰아왔다”며 “인민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면 전대미문의 제재와 봉쇄로 앞길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의 군사력이 “조국보위의 위력한 보검”이었으며 “부강번영의 힘 있는 선봉대”라고 치켜세웠다.
다만 연설내용이 원론적 수준에 그쳤고 핵 능력 등에 대한 언급이 없어 우려했던 것보다는 ‘양호한’ 내용이었다는 평가다. 최근 미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하는 등 대화 국면을 모색해온 만큼 유연한 전략적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11일 “미국에 대한 새로운 비판 없이 기존 입장만 간략히 언급하면서 ‘낮은 수준’의 비난을 이어간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인민’ 발언만 90여회…내부 다잡기 주력=김 제1비서는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축하연설에서 인민제일주의에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 연설 도중 ‘인민’ 단어만 90여회를 사용했고, 인민중시·군대중시·청년중시라는 3대 전략도 제시했다. 대규모 숙청을 통해 권력 안정화에 심혈을 기울여 온 그는 이제 집권 4년차를 맞아 ‘김정은 시대’를 열어 가겠다는 자신감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제1비서는 “70년의 승리의 역사와도 같은 인민을 하늘처럼 받드는 위대한 조선 노동당이 우리 혁명을 이끄는 기관차가 될 것”이라며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의 3대 전략을 무기로 틀어쥐고 최후 승리를 향해서 힘차게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설을 끝내면서도 “전체 당원동지들에게 호소한다. 우리 모두 위대한 인민을 위해 멸사 복무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북한은 이번 기념행사 준비과정에서도 ‘인민제일주의’를 수차례 강조해 왔다. 김 제1비서는 지난 4일 발표한 논문에서 “인민을 하늘같이 여겨야 한다”며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흘 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도 “내가 뼈가 부서져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민의 믿음이다. 인민의 믿음이 끊어지면 내 생명의 핏줄이 끊어지는 것”이라는 김 제1비서의 발언이 보도됐다.
김 제1비서가 연설 내내 단상에 두 손을 짚은 모습을 두고 건강 이상설도 다시 제기됐다. 목소리도 다소 쉰 상태였다. 고도비만인 데다 족근관 증후군 병력도 있어 허리나 관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제1비서가 육성연설을 한 것은 2012년 6월 조선소년단 창립 66돌 경축 소년단 연합단체대회 이후 3년여 만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北 노동당 70년 열병식] 김정은 연설 ‘인민’ 단어 90여회… 내부 다지며 외부에 유화 손짓
입력 2015-10-12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