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움직이는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恨)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다.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은 그 무엇’이라는 뜻처럼 알게 모르게 사람을 사로잡고 여간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이 쌓여서’ ‘한을 품지 마’ ‘한을 풀고 살아’와 같은 말에서 나타나듯 한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배신감, 트라우마, 억울함, 분함, 원통함, 좌절감’이 섞여드는 것이다. ‘회한, 통한, 원한’ 등 종류도 많다. 고 박경리 작가께서 한은 우리 민족에 배어 있는 감정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도 있다. 우리 문학을 ‘한의 문학’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에는 아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미국 드라마에서 한의 긍정적 의미를 부각시켰던 적이 있다. 정치 드라마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웨스트 윙’에서 바틀렛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는 ‘한’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아프고 원통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 한에는 절망만이 아니라 희망이 녹아 있다는 점이 특이하지요.” 그 드라마 에피소드의 제목이 “HAN(한)”이었다.
한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한을 품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을 어떻게 긍정적인 동기로 치환해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자신의 한 때문에 복수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의 한을 풀려고 온갖 권력을 동원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까지 좌우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런 가학성은 파괴적이다. 세상의 이치를 파괴할 뿐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도 파괴해버린다.
이 모두가 한에 담긴 희망의 뜻을 해석하지 못한 탓이다. 아픈 과거의 상처를 응시하되 그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더 큰 꿈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한의 뜻이다. 자신의 한뿐 아니라 다른 이의 한에 공감하면서 더 큰 세상을 위해 자신의 한을 딛고 일어나는 것, 그것이 꿈이 되는 한이 아닐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恨을 뛰어 넘어라
입력 2015-10-12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