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4자기구’] ‘아랍의 봄’ 상징… 혼돈의 튀니지에 민주화 길 닦다

입력 2015-10-10 02:40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튀니지의 국민협의체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를 이끄는 4명의 지도자들이 2013년 9월 21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위데드 보차마오이 튀니지 산업·무역·수공업연맹(UTICA) 회장, 하우신 아바시 튀니지 노동연맹(UGTT) 사무총장, 압데사타르 벤 무사 튀니지 인권연맹(LTDH) 회장, 모하메드 파델 마무드 튀니지 변호사회 회장. AFP연합뉴스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깜짝 선정된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4자 기구)는 ‘아랍의 봄’의 유일한 현재진행형 성공모델로 꼽히는 튀니지 민주화를 상징하는 협의체다. 국내에는 존재 자체가 생소하지만 ‘재스민 혁명’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2013년 결성돼 지난해 말 튀니지가 총선과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내전 직전까지 몰렸던 튀니지는 (아랍의 봄 이후) 수년 만에 헌법 시스템에 기반한 정부를 구축하고 성별과 종교, 정치신념에 관계없이 모두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게 됐다”면서 튀니지 민주화에 대한 결정적인 기여를 수상 이유로 꼽았다. 더불어 “(4자 기구의)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이 튀니지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하고,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4자 기구 중 하나인 튀니지 노동연맹(UGTT)의 하우신 아바시 사무총장은 이번 수상에 대해 “튀니지의 큰 기쁨이자 자랑인 동시에 아랍 국가에 대한 희망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화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면서 “무기를 내려놓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우리 지역(중동)에 전한 것”이라고 수상의 의미를 평가했다.

2011년 튀니지 중부 소도시의 한 노점상 청년이 생계를 비관해 분신하면서 시작된 튀니지의 민주화 시위 ‘재스민 혁명’은 벤 알리 독재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튀니지의 민주화 불꽃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 인접 중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돼 각국 독재정권의 연쇄 퇴진을 촉발하며 아랍의 봄을 알렸다.

2015년 현재 다른 국가들은 내전과 군사정권 회귀 등에 시달리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지만 발원지였던 튀니지만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차분히 민주화 절차를 밟으며 ‘중동 민주화의 희망’을 지켜왔다. 튀니지 정파들은 3년간 이어진 국정 혼란을 종식하고자 2013년 말 4자 기구로 상징되는 시민·노동단체의 중재 아래 집권당과 야권이 상생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총선을 무사히 치러냈고, 12월에는 튀니지 역사상 첫 자유경선으로 대선이 실시돼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이 벤 알리 축출 후 4년 만에 첫 민선 수반이 됐다.

지난해 초 개정된 튀니지의 새 헌법 역시 아랍권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고 있지만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법의 근간으로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고 남녀평등과 여성 권익 보호도 명시됐다.

재스민 혁명 이후 노벨 평화상 시즌마다 중동·아프리카의 민주화를 이끈 기구나 인물이 수상할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하게 제기됐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셔왔다. 노벨위원회가 4년 만에 아랍의 봄에 평화상의 영예를 안긴 것은 민주화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튀니지 국민들에 대한 응원이자 중동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염원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