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 묘연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이번엔 보상 논란

입력 2015-10-10 02:18
배익기씨가 2008년 7월 집수리 중 발견했다며 공개한 후 행방이 묘연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왼쪽)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사본. 연합뉴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자로 알려진 배익기(52·경북 상주)씨가 문화재청에 1000억원가량을 주면 상주본을 내놓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씨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상주본 가치가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치의 10분의 1 정도는 나에게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간수하는 것도 어렵고, 지키는 것도 어렵다”며 유상 기증 의사를 밝혔다.

과거 문화재청은 상주본에 대해 최소 1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배씨는 “문화재청 관계자에게 지난 7월 가치 금액의 10% 정도인 1000억원을 내 앞으로 남겨 달라고 제의했다”며 “아직 문화재청은 답변이 없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지금 주변에 내 편은 없기 때문에 상주본을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상주본을 공개할 분위기였으면 이미 공개했겠지만 현재로선 상주본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입을 열면서 상주본의 행방에 또다시 이목이 쏠리고 있다. 상주본은 국보급 보물로 평가된다. 상주본 발견 전까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본 단 한 권뿐이었다. 간송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간송 전형필 선생이 발견했다.

그런데 2008년 7월 배씨가 상주본을 공개하면서 문화계가 술렁였다. 배씨는 상주 자택을 수리하다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TV 방송에 직접 출연해 상주본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상주본을 감정한 문화재 전문가들은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국보 70호 간송본과 비교해 동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판본이란 평가를 내렸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을 만든 원리와 사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다. 간송본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상주본은 간송본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간송본에는 없는 훈민정음 연구자의 주석이 달려 있어 더욱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상주본은 소송에 휘말리면서 모습을 감췄다. 상주본 발견 한 달여 만인 2008년 8월 상주의 골동품상 조모(2012년 사망)씨가 나타나 “배씨가 우리 가게에 있던 상주본을 30만원 상당의 고서적 2상자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끼워 넣기 수법으로 빼돌려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1999년 안동의 한 절에서 상주본을 훔친 절도범에게 상주본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상주본을 도둑맞았다는 사찰도 소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조씨는 경찰 등에 배씨를 고소했지만 당시에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조씨는 포기하지 않고 2010년 2월 배씨를 상대로 물품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6월 대법원은 상주본이 조씨 소유라고 판결했다. 이에 조씨는 같은 해 7월 검찰에 배씨를 형사 고소했고, 배씨는 그해 9월 절도 혐의로 구속돼 2012년 2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배씨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그해 5월 조씨는 상주본이 없는 상태에서 소유권을 국가에 기증해버렸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항소심에 이어 2014년 5월 대법원에서도 배씨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복잡하게 꼬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 선고 시 배씨에게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했고 배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씨는 이후에도 상주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지난 3월 26일 배씨의 집에서 불이나 상주본 훼손 여부가 논란이 됐다. 화재로 주택 1채와 창고 1동이 모두 타면서 집 안에 있던 골동품, 고서적, 내부 집기 등이 함께 소실됐다. 배씨는 화재 당일 오전 외출한 상태였다. 화재 당시 집 안에 상주본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당시 배씨는 “숨기지 못한 해례본 극히 일부를 집 안에 뒀는데 누군가가 훔쳐갔거나 불에 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머지 해례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따라서 민사상 소유주인 조씨가 사망했고, 자신도 절도 혐의를 벗게 되자 배씨가 실질적인 소유권 회복과 실리를 찾기 위해 ‘1000억원 보상’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상주=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