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해진 ‘만추’ 만나보실래요?… 연극계의 블루칩 이명행, 이번엔 멜로 주연

입력 2015-10-12 02:38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배우 이명행이 연극 ‘만추’를 통해 멜로 연기에 도전한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영화 ‘만추’의 현빈 역이라 후배들이 놀린다”면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작품마다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hj컬처 제공

배우의 연기력을 논할 때 ‘잘 생김을 연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종종 사용된다. 실제로는 잘 생긴 배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잘 생겨 보인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 연극계에서 캐스팅 0순위에 꼽히는 배우 이명행(39) 역시 ‘잘 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데 이견이 없다.

배우 생활 10년째인 그는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이끄는 극단 마방진의 간판배우다. 올해 들어 마방진의 ‘칼로 막베스’ 칠레 공연을 비롯해 서울문화재단과 신시 컴퍼니의 ‘푸르른 날에’, 국립극단 ‘아버지와 아들’ 등 연극 3편과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에 바쁘게 출연한 그가 ‘만추’(10월 10일∼11월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시어터)로 다시 무대에 선다.

‘만추’는 6번이나 리메이크 됐던 동명의 한국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이번 연극은 2011년 현빈과 탕웨이를 주인공으로 김태용 감독이 각색 및 연출한 영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명행은 현빈이 연기했던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지난 8월말 캐스트가 처음 공개됐을 때 연극 팬들은 이명행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금세 수긍했다. 이명행이라면 무대 위에서 충분히 멋지게 보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만추’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8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그는 “요즘 극단 후배들을 만나면 ‘(현)빈이형 왔어요?’라며 놀린다”면서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나와 어울릴지 확신이 없었는데 워낙 좋아했던 영화인데다 멜로 연기에 도전하고 싶어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와 연극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연극이 캐릭터에 좀 더 살을 붙여서 알콩달콩한 느낌이 든다”며 “특히 연극은 무대 위에서 라이브 밴드의 음악과 함께 이뤄져서 감정적으로 한층 고양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코믹한 연기부터 진지한 멜로까지 종횡무진 오가는 그는 프로배우로서 출발은 그리 빠르지 않다. 중앙대 불문과 출신으로 대학 연극반에서 뒤늦게 연기의 맛에 빠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을 마친 뒤 2007년 극단 마방진에 들어가면서 배우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한예종을 졸업하고 1년간 혼자 이곳저곳 오디션을 보러 다니다가 학교 선배이기도 한 선웅이 형이 배우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며 “프리랜서 스타일보다는 극단에 소속된 게 나한테는 안정감을 주는 등 훨씬 좋았다. 게다가 극단이 추구하는 리드미컬하면서도 과장된 스타일과 호흡을 익힌 게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방진에서 꾸준히 작업하며 내공을 쌓아온 그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11년 고선웅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푸르른 날에’부터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는 계엄군의 고문으로 친구들을 배신하고 고통을 겪는 주인공 민호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또 2012년 고선웅이 연출한 재일교포 극작가 쓰카 고헤이의 대표작 ‘뜨거운 바다’에서도 주인공 부장형사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이후 김광보, 이성열, 김태형 등 스타 연출가들의 화제작에서 잇따라 주인공을 꿰찼다. ‘히스토리 보이즈’ ‘프라이드’ ‘스테디 레인’ 등 연극계 베스트셀러 작품에서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그의 이름만 듣고도 작품을 선택하는 관객이 생겼을 정도다. 스케줄도 빈 날이 없다. ‘만추’가 끝남과 동시에 문삼화가 연출하는 ‘거미여인의 키스’(11월 7일∼내년 1월 31일 대학로 신영아트홀)에 여장남자로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주변에서 휴식 없이 작품을 계속 하는 것을 걱정하는데 아직은 좀 더 다양한 캐릭터로 무대에 서고 싶다”며 “그동안 작품을 선택할 때도 비슷비슷한 이미지 대신 변신을 요구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내년에는 국립극단 ‘갈매기’로 안톤 체호프 작품에 첫 도전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