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9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을 바라는 고교생이 더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정부의 국정화 명분 중 하나인 ‘학부모·학생의 요구’를 뒷받침해주는 내용이다. 고교생 응답자들은 국정 체제가 되면 학습 부담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시 전문가 사이에선 “국정화돼도 학습량에는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늘 것”이라는 견해가 다수다. 이 때문에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친일 독재’ 프레임에 집중해 학습량 변동에 민감한 학부모·학생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소홀했다는 자성이 나온다.
◇수험생들 “국정화하면 학습부담 줄어”=강 의원은 9일 전국 고교 2학년생 20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0일부터 진행 중인 ‘대입제도 및 수능 안정화, 어디로 가야 하나’ 설문조사를 중간집계해 발표했다. 조사·분석은 성균관대 양정호 교수팀이 담당했다. 526명(9일 현재)의 답변을 취합한 내용으로 최종 결과는 15일쯤 발표될 예정이다.
국정 전환으로 한국사 교과서가 한 권이 되면 대학수학능력시험 학습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응답자는 53.3%였다. ‘그렇다’ 34.8%, ‘매우 그렇다’ 18.5%로 나타났다. ‘보통’이라고 답한 학생은 24.3%였고 ‘그렇지 않다’(11.1%), ‘전혀 그렇지 않다’(11.3%) 등 부정적 응답은 22.4%에 그쳤다.
국정화로 학습 부담이 줄 것으로 보는 학생이 2.4배 많았다. 또 현행 8종 교과서 체제에 대해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56.8%로 ‘적정하다’(39.0%), ‘늘려야 한다’(4.2%)보다 많았다.
◇전문가들 “학습 부담과 무관” “정부의 자기모순”=하지만 입시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종로학원하늘교육 김명찬 소장은 “교과서가 여러 종류일 때는 공통적인 사항을 공부하면 되지만 한 권이 되면 더 구체적인 내용까지 공부해야 해서 암기 부담이 더 증가할 것”이라며 “교과서가 단일종이라고 해서 학습량이 줄어든다고 예단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메가스터디 남윤곤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한국사라는 과목 자체가 (현재 수능 체제에서) 거의 학습 부담이 없다. 3등급이면 만점이나 다름없다”며 “정부가 학습 부담과 연계시키는 건 논리적 비약이다. 한국사를 절대평가로 전환할 때 ‘학습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놓고 ‘국정으로 전환해야 학습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건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입시 전문가는 “교육 수요자는 무조건 단순한 걸 좋아한다. 만약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갈지 물어보면 상당수가 찬성할 것”이라며 “여론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학생부종합전형(옛 입학사정관제) 강화 정책 같은 건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진보 진영이 전략적 실수를 했다.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처럼 친일·반공 프레임으로만 몰아가려 해 학부모·학생들에게 호소하지 못했다”며 “교육 수요자의 (국정 전환) 반대 여론이 많았다면 정부가 이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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