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2016년 대선전 초반 ‘자중지란’으로 혼돈에 휩싸였다. 수년간 굳건히 버텼던 ‘일인자’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지난달 말 갑작스레 의장직 사임과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후임으로 유력시되던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의원이 8일(현지시간) 돌연 의장직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권의 근간인 하원 지도부 새 판 짜기가 리더십 부재로 안갯속 국면에 빠지고, 당내 경선 레이스도 도널드 트럼프와 칼리 피오리나 등 외부인사가 압도하는 상황에서 2016년 대선전의 초반 페이스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매카시 의원은 이날로 예정된 후보 선출을 위한 의총을 앞두고 동료 의원들에게 출마 포기 의사를 밝힌 뒤 하원의장 선거를 연기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그는 자신은 의장직에 맞는 인물이 아니고 당의 분열이 걱정된다면서 “우리는 신선한 얼굴이 필요하다”고 사퇴의 변을 전했다.
표면적으로 매카시 의원의 사퇴를 초래한 것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불거진 ‘벵가지 특위’ 발언의 역풍이다. 그는 “우리가 벵가지 특위를 꾸린 뒤 클린턴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지 않나”라며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겨냥한 벵가지 특위의 ‘정치적 의도’를 드러냈다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특히 티파티를 등에 업은 보수 강경파 의원들은 대니얼 웹스터 의원(플로리다)을 지지하겠다고 선언, 매카시 끌어내리기에 나섰다. 중도 협상파로 분류되는 베이너 의장과 매카시 의원 등 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킨 셈이다.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인 트럼프 역시 “매우 강하고, 또 민주당과 협상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차기 하원의장으로) 필요하다”면서 “매카시 원내대표가 적임자인지는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안팎의 파장을 의식한 듯 매카시 의원은 “나는 (일부 공화당 표의 이탈 속에) 220표를 얻어 가까스로 이기고 싶지 않다”면서 “지금 우리 당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공화당 의원의 만장일치 지지 속에) 247표로 승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선거에서 현 하원 원내대표인 낸시 펠로시 의원을 전원 지지할 것으로 방침을 굳힌 민주당은 5년 만의 하원의장 탈환이라는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다수당인 공화당의 혼란은 워싱턴 정가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전망이다.
당장에 미국 정부 부채는 다음 달 5일을 전후해 상한선에 도달한다. 의회에서 한도를 다시 올리지 못할 경우 국가 디폴트(지불 불능)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때문에 자칫 공화당 차기 지도부 선출이 지연되거나 강경파가 득세하는 경우 디폴트를 불사하는 당파 대립과 여야 충돌이 발생해 대선 레이스에서도 공화당에 직격타를 안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CNN은 “공화당 기득권층이 2016년 대선 레이스의 첫 번째 판에서 패했다”면서 이는 외부인사들의 경선 약진과 더불어 “당내 인사들이 궁극적으로는 승리한다는 통념이 뒤집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주고 있다”며 대선후보 경선은 물론 본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혼돈의 美 공화당… 대선 ‘직격탄’ 맞나
입력 2015-10-10 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