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연금술사’ 김용규씨 “십계명은 ‘구속하는 문자’ 아닌 ‘자유의 선언’ 입니다”

입력 2015-10-12 00:47
철학자 김용규씨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십계명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표현한 자유의 선언”이라고 말했다. 위는 최근 펴낸 그의 책 ‘데칼로그’. 전호광 인턴기자
신구약을 통틀어 하나님이 직접 내린 유일한 성문율. 인간들 사이에 변경 가능한 계약이 아닌 궁극적 계약. 그래서 '언약(covenant)'이 아니라 '계약(Testament)'으로 번역되는 유언 같은 약속. 그리스어로 '데칼로그'로 불린다. '열(10)'을 뜻하는 '데카(deka)'와 '말'을 뜻하는 '로고이(logoi)'가 결합한 단어이다.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수많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시대를 거듭하며 성경신학적 틀로 그 의미를 풀어왔다. 그런데 이 십계명 해석에 한 인문학자가 뛰어들었다. 거기에 폴란드의 영화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10부작, '데칼로그'를 매개로 해서 십계명이 담고 있는 기독교적 의미를 본격 탐색했다.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 '인문학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철학자 김용규(64)씨다.

김씨는 십계명은 “자유의 선언”이라고 했다. 인간을 탐욕이라는 족쇄로 옭아매어 파멸로 이끄는 죄의 마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만드는 10가지 열쇠가 십계명이라는 것이다. 최근 ‘데칼로그’(포이에마)를 펴낸 김씨를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번 책은 2002년 펴낸 것을 수정·보완했다.

그는 “십계명은 근본적으로 단 하나의 계명”이라며 “인간을 죄와 그 산물인 탐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려는 오직 하나의 일관된 의지의 구체적이며 반복적 표현”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십계명은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라는 하나의 계명 안에 나머지 계명이 포함된다.

그에 따르면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구원, 곧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죄란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상태이지만 그 결과는 수많은 탐욕에 의한 우상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십계명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의지가 구체화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죽이는 문자’가 아니라 자유를 선사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자로서 김씨의 십계명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은 풀이 방식이다. ‘데칼로그’는 단순히 성경신학에 의해 풀어내지 않았다. 다양한 문사철(文史哲)을 인용해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변증을 시도했다. 또 방대한 교회사와 기독교 사상사, 신구약 성경 구절을 사용해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 그의 십계명 해석의 핵심은 존재론 철학의 관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존재론이란 2500년 전에 걸친 서양 철학사 안에 내려오는 전통 중 하나로, 파르메니데스로부터 플라톤, 플로티노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완성된 특별한 이론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을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만물의 기원을 추적하던 철학자들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는데 이 존재론이 당시 신흥종교였던 기독교와 만나면서 기독교신앙을 체계화하고 교리화하는 데 차용되었지요.”

그의 책 ‘데칼로그’는 수많은 인문학 관련 인용이 등장하지만 두꺼운 철학서나 역사책을 읽는 것 같지 않다. 술술 읽히고 친절하다. 특히 저자의 집필 노력으로 독자는 똑똑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초반의 제1계명을 설명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이성(理性)의 민낯’에 대한 설명은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며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를 공격하는 공격적 무신론에 대한 웅대한 변호다.

김씨는 현대의 ‘신’으로 등극한 이성과 과학주의에 대해 “이성은 욕망이 아니라 정신에 뿌리를 두었다는 점에서 다른 우상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새로운 종류의 우상”이라며 “이성의 횡포가 예전의 그 어떤 우상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더욱 발달한 과학기술과 탐욕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앞세운 근대적 이성이 오늘날 더욱 교활하고 치밀하게 우리의 숨통을 틀어쥐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이성은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 능력으로 삶과 문명을 위한 유용한 도구이자 수단이었다. 중세에는 신앙에 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 계몽주의와 과학주의, 실증주의, 합리주의를 거치며 ‘신처럼’ 숭배되기에 이른다.

김씨는 이에 대한 기독교적 반응이 무시나 무조건적 반대가 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과학이 반기독교적이라고 과학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보세요. 하루의 시작과 마감을 핸드폰으로 합니다. 통신비가 헌금보다 많습니다. 말씀을 스마트폰 어플로 봅니다. 그런데 과학을 무시하자고요?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과 이성이 신이 아니라는 설명해야 합니다.”

그는 이어 공격적 무신론자는 자가당착적이라고 했다. “종교가 모든 갈등의 원인이라면 과학이 동반하는 위험성과 폐해 때문에 과학을 아주 없애야 할까요? 도킨스나 해리스 등의 논법대로라면 첨단무기를 만드는 과학은 없애버려야 하죠. 과학을 내세워 기독교를 공격하는 그들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탐욕적이며 맹목적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지요?”

김씨는 1982∼92년까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와 튀빙겐대에서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인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불트만 학파 출신으로, 칼 바르트의 사상을 섭렵했던 에버하르트 융엘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성찰을 바탕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모색해온 그는 대중적 철학서와 인문교양서 등을 집필했다. 그동안 17권을 썼고 기독교와 관련해서는 ‘서양 문명을 읽는 코드, 신(휴머니스트)’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휴머니스트)’ 등을 썼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