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떫은 감

입력 2015-10-10 00:10
가을 감나무. 픽사베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계절이다. 배수가 잘되나 토양에 수분이 30∼40%에 이르는 습윤한 곳에 서식하며, 비교적 많은 물 공급을 필요로 하는 감나무가 심한 가뭄을 견디고 주황의 열매를 맺으니 대견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떨구지 않은 넓은 잎은 아직도 짙은 녹색을 담고 있고 그 사이사이 동그란 주황과실과 파란 가을하늘이 뒤섞여 강렬하지만 편안한 색감을 자랑한다. 하나 따보고 싶으나 손이 닿지 않아 그냥 갈 길을 가지만 저 감이 단감인지 떫은 감인지 감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감나무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원산지로 하는 동아시아 대표 과수 중 하나로 많은 품종이 개발되었으나 단맛과 떫은맛 두 가지로 구분되기도 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재래종은 삽시, 즉 떫은 감이다. 따라서 등산길에서 만난 우리 감나무는 떫은맛의 열매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떫은 감은 단감에 비해 추위에 강하고 질병에도 강한 저항성을 지녀 높은 생존력을 지닌다. 외유내강의 과실수라 해도 무방하다.

감이 떫은맛을 내는 것은 열매에 있는 타닌성분 때문이다. 타닌은 나무가 병균과 해충, 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타닌이 균체에 유입될 경우 단백질 응고현상이 일어나 병원체를 고사시키고, 떫고 쓴 불쾌한 맛으로 곤충이나 조류의 섭식을 억제시킨다. 감이 지닌 타닌은 디오스프린이라는 물질로 수용성을 띠어 침이 닿는 순간 떫은맛은 입안으로 일시에 퍼진다.

감의 떫은맛을 없애는 것을 탈삽이라 한다. 여기엔 긴 시간을 기다리는 자연적 방법과 온수나 알코올로 처리하는 인위적 방법이 있다. 탈삽되면 단맛이 드러나는데 이는 타닌이 제거되거나 당분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고, 이화학적 반응으로 타닌이 불용성으로 전환돼 떫은맛을 느끼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알코올을 이용하는 경우 아세트알데하이드 성분이 타닌과 결합해 불용성이 된다.

단맛을 좋아해 단감 품종을 800여개나 개발한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로 우리에게 쓴맛을 주니 이율배반적이다 싶다. 강인함과 긴 호흡의 미학을 담은 우리의 감, 사곡시, 단성시, 고종시, 분시, 원시 등으로 이 떫은 감정을 달래보자.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