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34년째를 맞은 만큼 가을에는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펼쳐졌다. 기쁨과 환희, 영광과 함께 통한의 눈물이 쏟아졌다. 가을의 전설을 만들기 위해 구단과 선수들은 사력을 다해 명승부를 펼쳤다.
◇10여년 전만해도 가을 징크스에 시달렸던 삼성=21세기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도 숨기고 싶은 ‘흑(黑)역사’가 있다. 삼성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가을 징크스에 시달렸다. 당시 OB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은 이선희가 김유동에게 만루홈런을 맞아 한 해의 패권을 내줬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원년부터 2001년까지 포스트시즌에 14차례나 진출했고, 한국시리즈에도 7번이나 나갔지만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특히 1984년에는 져주기 논란까지 벌이며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를 선택했지만 최동원의 역투에 밀려 무릎을 꿇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김영덕, 박영길, 김성근 등 수많은 명장들을 모셔 왔지만 가을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결국 삼성은 2002년 해태의 9회 우승을 일군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고 다른 팀에서 임창용과 김기태, 마해영 등을 돈으로 싹쓸이한 끝에 ‘가을 징크스’에서 탈출했다.
◇기적의 레이스 펼친 롯데·두산=포스트시즌에선 상위에 있는 팀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만큼 체력을 덜 소모한 상태에서 잇단 혈전으로 지친 상대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스트시즌 역사상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한 사례가 딱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1992년 롯데다. 당시 롯데는 정규리그에서 3위를 차지하며 준플레이오프부터 치렀다. 하지만 그 해 신인왕 염종석을 앞세운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각각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롯데는 빙그레 이글스와 가진 한국시리즈에서도 4승 1패를 거두며 1984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은 두산이 기적을 일궜다. 당시 김인식 감독이 지휘한 두산도 롯데와 마찬가지로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2연승을 거둔 후 플레이오프에선 그 전해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를 3승 1패로 격파했다. 두산은 결국 정규리그 1위 팀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만나 4승 2패로 그 해 패권을 차지했다. 이 때 우승으로 두산은 이후 ‘미러클 두산’이라는 슬로건을 수년간 내세웠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사례는 두산이 마지막이 됐다. 이후 한국시리즈에선 정규리그 우승 팀이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해태→현대→SK→삼성으로 이어지는 왕조 계보=가을에 무적을 자랑하는 팀을 프로야구에선 ‘왕조’로 부른다. 초대 왕조는 해태다. 김응용 감독의 지휘 아래 선동열, 김봉연, 김성한, 이순철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포진한 해태는 1980∼90년대 무적으로 군림했다. 1983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모두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해태가 외환위기로 모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결국 KIA로 인수되자 왕조의 바통은 현대 유니콘스가 이어 받았다.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감독이 이끈 현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당시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으로 이어지는 마운드는 최강이었다. 2000년에는 역대 한 시즌 최다승(91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현대는 외환위기 이후 막강한 자금력으로 쌍방울 레이더스 등 자금난에 시달리는 구단으로부터 박경완, 조규제 등 실력 있는 선수들을 현금으로 사오는 ‘선수 쇼핑’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SK 왕조가 들어섰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지휘아래 선수들은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으로 상대 팀을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이 프런트와의 마찰로 2011년 시즌 도중 해임된 후 SK 왕조는 문을 닫았다. 2011년부터는 삼성이 왕조로 군림하고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가을야구가 낳은 이야기] 삼성 ‘20년 징크스’ 깨고 21세기 호령
입력 2015-10-10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