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가 낳은 이야기] 삼성 ‘20년 징크스’ 깨고 21세기 호령

입력 2015-10-10 02:56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이 2002년 11월 10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LG 트윈스를 꺾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뒤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포스트시즌에 14차례나 진출했고 한국시리즈에도 7번이나 나갔지만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삼성은 결국 가을야구 징크스를 깼다. 국민일보DB
한국 프로야구가 34년째를 맞은 만큼 가을에는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펼쳐졌다. 기쁨과 환희, 영광과 함께 통한의 눈물이 쏟아졌다. 가을의 전설을 만들기 위해 구단과 선수들은 사력을 다해 명승부를 펼쳤다.

◇10여년 전만해도 가을 징크스에 시달렸던 삼성=21세기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도 숨기고 싶은 ‘흑(黑)역사’가 있다. 삼성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가을 징크스에 시달렸다. 당시 OB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은 이선희가 김유동에게 만루홈런을 맞아 한 해의 패권을 내줬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원년부터 2001년까지 포스트시즌에 14차례나 진출했고, 한국시리즈에도 7번이나 나갔지만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특히 1984년에는 져주기 논란까지 벌이며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를 선택했지만 최동원의 역투에 밀려 무릎을 꿇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김영덕, 박영길, 김성근 등 수많은 명장들을 모셔 왔지만 가을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결국 삼성은 2002년 해태의 9회 우승을 일군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고 다른 팀에서 임창용과 김기태, 마해영 등을 돈으로 싹쓸이한 끝에 ‘가을 징크스’에서 탈출했다.

◇기적의 레이스 펼친 롯데·두산=포스트시즌에선 상위에 있는 팀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만큼 체력을 덜 소모한 상태에서 잇단 혈전으로 지친 상대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스트시즌 역사상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한 사례가 딱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1992년 롯데다. 당시 롯데는 정규리그에서 3위를 차지하며 준플레이오프부터 치렀다. 하지만 그 해 신인왕 염종석을 앞세운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각각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롯데는 빙그레 이글스와 가진 한국시리즈에서도 4승 1패를 거두며 1984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은 두산이 기적을 일궜다. 당시 김인식 감독이 지휘한 두산도 롯데와 마찬가지로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2연승을 거둔 후 플레이오프에선 그 전해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를 3승 1패로 격파했다. 두산은 결국 정규리그 1위 팀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만나 4승 2패로 그 해 패권을 차지했다. 이 때 우승으로 두산은 이후 ‘미러클 두산’이라는 슬로건을 수년간 내세웠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사례는 두산이 마지막이 됐다. 이후 한국시리즈에선 정규리그 우승 팀이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해태→현대→SK→삼성으로 이어지는 왕조 계보=가을에 무적을 자랑하는 팀을 프로야구에선 ‘왕조’로 부른다. 초대 왕조는 해태다. 김응용 감독의 지휘 아래 선동열, 김봉연, 김성한, 이순철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포진한 해태는 1980∼90년대 무적으로 군림했다. 1983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모두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해태가 외환위기로 모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결국 KIA로 인수되자 왕조의 바통은 현대 유니콘스가 이어 받았다.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감독이 이끈 현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당시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으로 이어지는 마운드는 최강이었다. 2000년에는 역대 한 시즌 최다승(91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현대는 외환위기 이후 막강한 자금력으로 쌍방울 레이더스 등 자금난에 시달리는 구단으로부터 박경완, 조규제 등 실력 있는 선수들을 현금으로 사오는 ‘선수 쇼핑’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SK 왕조가 들어섰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지휘아래 선수들은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으로 상대 팀을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이 프런트와의 마찰로 2011년 시즌 도중 해임된 후 SK 왕조는 문을 닫았다. 2011년부터는 삼성이 왕조로 군림하고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