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광은 탐사전문기자 출신의 벨라루스 반체제 성향 여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돌아갔다. 노벨문학상이 개인적 문제보다는 세계 평화와 인간 본연의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에게 돌아간다는 공식이 다시 입증된 것이다. 특히 주류 세계에서 배제돼온 여성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온 그의 작품 세계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이라는 호평을 받아왔다. 논픽션을 기반으로 한 작가에게 주어진 상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여성 작가로서는 2년 전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에 이어 14번째 수상자다. 인기 작가 위주의 국내 문학시장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전 세계 19개국에 소개돼 가장 유력한 후보자였다.
◇누구인가=1948년 우크라이나 스타니슬라브(1962년 이바노-프란콥스크로 개명)에서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전쟁에서 불구가 된 가족사는 문학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 언론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지역 신문사를 거쳐 민스크의 문학예술 잡지 ‘네만’ 기자로 일했다.
루카센코 정권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2000년 벨라루스를 떠났다. ‘난민네트워크를 위한 국제도시’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 외국을 떠돌다 2011년 민스크로 귀국했다.
그는 벨라루스의 유명 작가 아다모비치의 영향을 받았다. 아다모비치의 작품 ‘포위의 책(The Book of Siege)’은 이전에 없던 장르다. ‘집단 소설’ ‘소설 오라토리오’로 명명되는 이 작품은 그가 인터뷰를 기반으로 새로운 글쓰기 장르를 개척하는 데 영감을 줬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작가는 “(상금으로) 이제 안정적으로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며 반겼다고 AP통신이 8일(현지시간) 전했다. 현재 두 개의 작품을 구상 중이며 내년에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 세계=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다성적 글쓰기(polyphonic writings)’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에 대한 기념비(a monument to suffering and courage in our time)’. ‘다성적 글쓰기’는 그의 문학이 가진 형식적 특징을 말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소설도 시도 아닌 새로운 장르를 창시했다. 이른바 ‘목소리 소설’이다.
수백 명의 사람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논픽션 형식으로 구성해 문학작품을 만든다. 지난 30∼40년간 1차 세계대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붕괴, 체르노빌 사고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개인들이 인터뷰 대상이다. 이를 통해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개인들에 목소리를 부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글쓰기 방식은 기자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은 인터뷰를 이어붙인 것이지만 소설처럼 흡입력이 있다. 아울러 정치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감정의 연대기, 영혼의 역사를 창조했다”는 극찬을 듣는 이유다. 데뷔작이자 200만부 이상이 팔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에서 작가는 이전까지 전쟁 관련 책들이 외면해온 참전 여성들을 소환해 그들의 독백 형식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같은 해에 나온 ‘마지막 증인들’ 역시 아이들의 시선으로 2차대전의 실상을 증언한 작품이다. 4년 뒤에는 러시아가 벌였던 아프간 전쟁의 범죄적 행위를 다룬 ‘아연 소년들’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선 ‘전쟁문학 장르의 발견’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여자와 아이들의 눈을 통해 이제까지 전쟁을 바라보던 주류적 시각을 뒤집으며 전쟁의 이면을 들춰냈다. 작가는 전쟁을 다르는 것에 대해 “우리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면서 “우리는 항상 싸우거나 전쟁을 준비하면서 살아왔고 다른 삶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자본주의 이행기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 ‘죽음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과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유증을 다룬 ‘체르노빌의 목소리’(이상 1993) 등을 선보였다. 스웨덴 한림원이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에 대한 기념비”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 2권이 국내에 번역 출간돼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노벨문학상 알렉시예비치는 누구… 시적 다큐멘터리 작가, ‘목소리 소설’ 새 장르 창시
입력 2015-10-09 01:14 수정 2015-10-09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