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알고 전화했어요?”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서 청소일을 하는 50대 여성 A씨는 기자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했다. 그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는 그가 청소하는 건물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다. 퇴근해 건물을 나서는 A씨 얼굴을 알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화장실 청소 점검표’에 그의 얼굴 사진까지 붙어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이런 ‘청소실명제’의 문제를 묻는 기자에게 “실제 걸려오는 전화가 많지는 않은데, 혹시 누군가 나쁜 뜻으로 전화할까봐 걱정되기는 한다”고 말했다.
이 건물의 1층과 2층에는 식당·카페 등 편의시설이 있다. 연면적 3000㎡ 이상이어서 공중화장실법 적용 대상이다. 이런 건물은 지난해까지 관리인의 실명과 연락처를 공개토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강제 조항이 수정됐지만 ‘과잉 친절’을 강요하는 실명제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고, A씨의 개인정보는 누구나 이용하는 화장실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화장실에 청소근로자의 개인정보를 게시하는 방식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지난해부터 개선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4월 화장실 관리인의 사진을 붙이지 말라는 공문을 유관기관에 보냈다. 12월에는 공중화장실법에서 ‘실명 게시’ 문구를 삭제하기도 했다. 올 7월 지방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을 보내 실명·사진 부착은 필요하지 않다고 재차 안내했다.
하지만 실명과 연락처 표기방식은 제각각이다. 어떤 곳에는 이름과 얼굴사진, 휴대전화번호가 붙어 있고, 다른 곳에는 이름과 담당부서 전화번호만 있기도 하다. 공공기관이면서 개인정보와 근로자 인권에 더 둔감한 곳도 있다. 서울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지하상가 화장실에는 청소근로자의 사진이 화장실 청소 점검표에 붙어 있다. 공단 측은 “바뀐 규정을 잘 알지 못했다.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공공기관과 달리 일부 민간 건물에서는 모범 사례가 눈에 띈다. 서울의 한 백화점 화장실에는 ‘이용 시 불편한 점이 있으면 즉시 조치하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담당부서의 유선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청소근로자의 사진은 물론이고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했다고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 백화점 화장실을 이용한 최모(29)씨는 “어머니뻘인 청소 아주머니들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 얼굴사진을 보는 게 오히려 불편하다. 담당부서 유선 전화번호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정보를 제공하도록 강제하는 청소실명제에 대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담당부서 유선 전화번호는 서비스 차원에서 용인할 수 있지만 개인 연락처와 전화번호, 사진 제공은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 담당부서 유선 전화번호를 표시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행자부 관계자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없도록 관련 내용을 꾸준히 안내하겠다”고 답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과잉 친절’ 한국사회의 두 단면] ‘불편 즉시 해결’ 좋지만… 이 청소노동자 인권은?
입력 2015-10-09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