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국 교수 “기독교 선교사가 한글 활자 근대화 이끌어”

입력 2015-10-09 02:01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소속 존 로스 목사가 개발한 ‘한글 4호’ 활자가 사용된 ‘조선어 초보’(1877년) 내지. 오른쪽은 파리외방전교회의 조선 선교사들이 제작한 ‘한불자전’(1880년) 표지.홍시 제공

서구식 인쇄기에 사용하는 한글 납활자를 개발한 주역들은 서양 선교사들이었다. 조선 말기 선교에 나섰던 개신교와 천주교 선교사들은 한글로 된 성경이나 교리서 등을 인쇄해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글 활자를 만들어냈다.

류현국 일본 스쿠바기술대 종합디자인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한글 활자의 탄생’(홍시)에서 “한글 활자 인쇄의 근대화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많은 부분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기독교 선교사들은 신식 한글 활자를 개발해 서양의 인쇄기술로 한글 성경을 출판·보급했다. 한국 출판 인쇄 활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책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만들어진 한글 활자와 한글 활자 제작소, 인쇄소, 한글 활자의 타이포그래피 특징 등을 정리했다. 류 교수는 12년 동안 40여개국을 찾아다니며 흩어져 있는 한글 활자에 대한 기록을 확인해 그동안 한글 활자사에서 비어 있던 ‘근대 활자사’를 채워냈다.

류 교수의 연구는 한글 근대 활자사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을 조명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초기 한글 활자인 ‘한글 4호’(1877년)와 ‘한글 3호’(1879년)를 개발한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소속 존 로스(John Ross·1837∼1905) 목사가 대표적이다. 1874년부터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중국 동북부지부에 부임한 로스 목사는 요코하마 도쿄쓰키지활판제조서에 한글 3호 활자 제작을 의뢰했고, 제작된 활자를 중국 선양에 위치한 ‘문광서원’으로 보내도록 했다. 문광서원에서 1881년 10월에 시험본으로 인쇄한 4페이지짜리 교리서 ‘예수성교문답’과 ‘예수성교요령’은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한글 개신교 문서다.

비슷한 시기에 천주교 선교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했다. “1878년부터 1881년까지 요코하마에서 출판 활동이 이루어졌고, 이후 나가사키에 조선교구 인쇄사가 설립되어 한글 활자로 제작된 교리서가 대량 출판되어 조선에 보급됐다.”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납활자 인쇄물은 프랑스왕립인쇄국에서 제작한 ‘한글 개요’(1864년)다. 선교사들이 한글 활자로 찍어낸 이른 시기의 책으로는 ‘조선어 초보’(1877년)와 ‘한불자전’(1880년)이 있다.

홍윤표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근대 시기 한글 납활자의 생성과 그 발달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연구업적이 없었다”며 “이 책은 한글 납활자에 대해 전면적으로 기술, 설명한 최초의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