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한민국 정체성 확립인가 다양한 견해의 수용인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에 대해

입력 2015-10-09 00:45

현재 한국사회는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를 놓고 심각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국정화 찬성 쪽에서는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가 해방 후 한국사를 실패의 역사로 간주하고,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국정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쪽에서는 국정화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가가 다양한 견해를 통제하는 독재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쟁에서 우리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얼마나 제대로 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의 교과서는 해방 이후의 한국사를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분단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에게 해방 이후 한국사는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한 실패의 역사이다. 해방 이후 한민족이 통일되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슬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출발하지 않았다면 이 나라는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최선은 아니지만 공산화를 막고,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고육지책이며 차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의 중심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많은 한국사학자들은 해방 이후 일부 좌파인사를 중도좌파로 둔갑시키고, 일부 우파인사를 중도우파로 만들어서 이들에게 민족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여 해방 이후 한국사의 정통세력으로 간주한다. 이런 견해는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려는 세력을 극우적인 민족반역세력으로 보게 하며, 이런 나라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미국을 제국주의로, 이승만을 반민족적인 인사로 비판한다. 하지만 이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한 민주공화국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미국의 도움과 이승만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검인정교과서는 바로 이런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부정하고 있다. 이런 교과서가 과연 대한민국의 교과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이런 국정화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헌법은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되 헌법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검인정교과서 저자들은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어긋난다고 보며 내린 수정명령에 불복한다. 이것은 현재의 검인정교과서 저자들이 헌법체제를 넘어선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교과서에 싣기를 그렇게 반대하던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내세워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현재의 국정화 논란은 소위 진보적 인사들이 자초한 것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8종의 교과서 가운데 보수적인 교과서 하나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는 다양화를 주장한다. 공교육에서 사용되는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보존하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생각이 수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정화를 주도하는 관계당국도 국정화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아닌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특정정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한국기독교역사교과서공동대책위원회 전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