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출신 ‘마카오 정킷방’ 1인자 단골 기업인은 수십억대 ‘바카라’

입력 2015-10-09 02:17

이모(40)씨는 2007년 3월 사행성 게임기 ‘알라딘골드’와 ‘바다이야기’ 수십대를 늘어놓고 돈을 벌었다. 어수룩한 이를 ‘바둑이’ 도박판에 꾀어내 하룻밤에 1000만원을 따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적발돼 같은 해 10월 광주지법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원래 범서방파 계열 폭력조직인 광주송정리파 행동대원이었는데, 판결문에는 성인오락실 업주라고 적혔다.

이미 폭행 전과가 있던 이씨를 수사 당국은 각별히 주목했다. 단속이 거듭돼 이씨는 국내에서 오락실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마카오로 향했다. 그곳에 먼저 간 광주송정리파 선배가 ‘정킷’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소문이 난 터였다.

정킷은 ‘경비부담 없는 여행’이라는 호텔업계 용어였는데, 마카오에서는 원정도박 손님을 알선한다는 뜻으로 통한다. 이씨는 카지노업체에 보증금을 걸어 VIP룸을 빌리고, 손님들을 그리 안내하는 일을 배웠다. 2011년 10월부터는 마카오 시오디호텔, 쉐라톤호텔, MGM호텔, 크라운호텔이 새로운 활동무대가 됐다. 광주 광산구에서 하던 바다이야기 장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판이었다.

이씨는 판돈의 1.24%가량 ‘롤링수익’을 받거나 손님이 잃은 돈의 40%를 ‘루징수익’으로 챙겼다. 거물급 선배 연줄 덕인지 마카오의 롤링업자들이 이씨에게 거액을 지원했고, 이씨는 손님들에게 제때 도박자금을 빌려줄 수 있었다. “마카오에 크게 놀러 가려면 이씨를 통해야 한다”는 입소문이 국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씨의 단골손님 중에는 정운호(50·구속)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처럼 이름난 기업인도 있었다. 정 대표는 2012년 3월 시오디호텔 VIP룸에서 이씨에게 1000만 홍콩달러(약 14억원)를 빌려 ‘바카라’를 했다. 딜러에게 카드를 받아 끝자리 숫자가 9에 가까우면 칩을 따는 도박이다. 순식간에 승부가 나 한번 앉으면 수십 판을 했다.

정 대표는 그해 5월에도, 9월에도 왔다. 지난해 9월에도 마카오를 찾아 호텔 2곳에서 바카라를 했다. 갤럭시호텔에서 14억원을 잃더니, 시오디호텔로 옮겨 ‘하이롤러’로 변신했다. 칩의 2배 액수로 정산하는 ‘더블게임’을 했다. 이씨는 그때마다 홍콩달러를 지원했다.

마카오 정킷방 1인자의 화려한 나날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지난 4월 검찰이 기업인 원정도박 수사를 본격화하자 이씨는 큰 압박을 받았다. 수사 당국에는 이씨에 대한 진술들이 쌓여갔고,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친 이씨는 체포될 줄 알면서도 자포자기 상태로 지난달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다. 그는 사실 2012년 10월부터 별건으로 지명 수배된 상태였다.

검찰은 그를 상대로 기업인 원정도박자 명단을 계속 확인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심재철)는 8일 도박장소개설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구속 기소했다. 그는 이번 공소장에서는 ‘마카오 정킷방 한국담당 총괄 책임자’라고 적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