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국가 안위와 직결된 정보를 취급하는 최고 정보기관이다. 그런 만큼 어떤 국가기관보다 철저한 보안이 요구된다. 때문에 국정원과 그 구성원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법과 국가정보원직원법에 따라 일반 공무원보다 엄격한 규율이 적용된다. 조직과 정원이 공개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안전기획부 시절을 포함해 국정원이 과거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원훈이나 부훈으로 삼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굳이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직무상 얻은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국정원직원법 17조 1항이 없더라도 임무의 속성상 비밀유지는 상식 중의 상식에 속한다. 최고 수준의 정보를 다뤘던 원장의 경우 직원에 비해 보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펴낸 책을 통해 남북 간 비공개 사항을 밝힌 김만복 전 원장이 비밀누설 혐의로 국정원에 의해 고발됐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이쯤 되면 상습이다. 그는 2008년에 17대 대선 직전 방북해 김양건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나눈 대화록을 언론에 흘렸다가, 2011년엔 남북 정상회담 미공개 내용을 일본 월간지에 공개해 검찰 수사대상에 올랐었다. 하지만 입건유예, 기소유예 처분으로 두 번 모두 사법처리를 면했다.
이 때문인지 김 전 원장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다. 그는 8일 서울중앙지법 심리로 열린 국정원의 책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심문기일에 출석해 “국가기밀의 범위를 너무 좁게 본다. 국민에게 알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부분 공개된 사실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비밀이 아니다”고 말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정보기관의 장을 지낸 그가 시중에 나도는 ‘막연한 추측’과 ‘확인된 사실’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다.
국가기밀의 범위를 엄격하게 규정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야당마저 김 전 원장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마당이다. 일부 지적대로 내년 총선용이거나 책을 많이 팔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십중팔구 실패다. 국가기밀을 사욕을 위해 악용하는 악폐를 막기 위해서도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요구된다.
[사설] 국정원 정보 흘려놓고 되레 큰소리치는 김 前 원장
입력 2015-10-09 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