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산책길, 앞뒤 산을 채색하는 단풍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그 황홀하던 빛깔이 다 퇴색하고 바래버린 나뭇잎들의 주검이 쌓인 낙엽무덤이다.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한 무더기의 낙엽무덤이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을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 문득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
한 알의 밀알은 땅에 떨어져 썩어 새로운 싹으로 부활하지만, 한 잎의 낙엽이 땅에 떨어져 썩게 될 때에는 그렇게 부활한 새싹들로 지친 나그네가 쉬어 갈 수 있는 커다란 나무로 자라도록 자양분이 되어 준다는 깨달음,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퇴색한 낙엽무덤 앞에 서서 ‘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아프게 인정하며 비록 한 알의 밀알처럼 새로운 싹으로 부활할 수는 없을지라도 썩고 또 썩는 완전한 소멸로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저 좋은 증인의 삶이다. 그런 선교자의 삶이야말로 세상에서는 이름도 빛도 없을지라도 하늘에서는 해처럼 빛날 것이리라.
한 해 동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지는 모습까지도 아름다워 보이고 창조주의 섭리를 깨닫게 해주는 낙엽편지들을 바라보며 내가 쓰는 글과 연출하는 선교 극이 ‘참 따뜻하고 선하구나’라고 전해지길 소망한다. 또 보고 읽는 이들에게 이런 이미지와 성령의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세상과 사람들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내 안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하겠다.
최첨단적이고 초자극적인 골리앗 같이 악한 세상의 문화와 싸워 이기기에는, 선교자로서의 작은 나의 몸짓이 어린 다윗처럼 연약해 보인다. 그렇다할지라도 내 자신이 낙엽처럼 아름다운 소멸이 되어 멸망의 문화, 죽임의 문화인 세상의 문화로 영혼육이 죽은 자와 같이 된 이 땅의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리는 일에 퇴비로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낙엽무덤 앞에서 내가 나에게 가만히 말해준다.
박강월(수필가·주부편지 발행인)
[힐링노트-박강월] 낙엽편지
입력 2015-10-10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