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은 한 개인의 장래가 가문이나 학벌 그리고 외모와 같은 환경이 아니라, 그의 내적인 자아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또한 한 나라의 장래도 국토의 넓이나, 자원 그리고 기후와 같은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최근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고위층 자제들 특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요즘,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돼가고 있습니다. 특목고나 로스쿨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없애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 상승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최근 한 뉴스 앵커의 멘트가 이를 반영하는 듯하다. 이는 지난 8월 말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8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인용한 것이다.
음서제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나 고위직의 자손들을 과거시험을 치르지 아니하고 관리로 채용하던 것을 말한다. 이 뉴스에 의하면, 법관의 등용문인 로스쿨을 졸업하는데 필요한 돈이 2억 원이 넘으며, 특목고의 연간 학비가 8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로스쿨 입학생들의 출신 고교를 보면 강남 3구와 특목고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대 로스쿨은 절반 이상이 강남 3구와 특목고 출신이니 이런 말이 나올 법하다.
여기에서 우리사회가 꼭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서구사회의 장학제도이다. 서구사회는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호주 같은 나라는 풀타임 학생에게 생활비까지 주고 있다. 우리 사회도 국가와 대학 장학금을 대폭 확대하여야 한다. 돈이 없어서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은 무정부 상태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지난달에 시드니를 관통하는 파라마타 로드를 자동차로 왕래했는데, 도로를 보수한지 오래되어 승차감이 형편없었다. 동승한 호주시민에게 물었더니, 빈곤층 복지와 장학제도 우선정책으로 도로보수가 연기된다는 것이다. 도로는 자동차가 다닐 정도면 된다고 하면서, 그러나 장학금은 젊은이들에게 일용할 양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우리 현실이 장학금이 절대부족하고 청년 취업이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옛말’이라거나, ‘노력해도 헛짓’이라고 언급하는 ‘노력 담론’에 대한 불신론은 우리사회를 붕괴시키는 무서운 병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대학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각종 ‘수저론’과 ‘죽창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는 우리를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사회는 엉뚱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상징한다. 이를 심리학은 레질리언스(resilience) 또는 외상후성장이라고 한다.
공자는 한 살 때에 부친이, 루소는 태어나자마자, 데카르트는 한 살에, 파스칼은 세 살에 모친이 사망하였으며. 레오나르 다빈치는 사생아였고 바흐, 루소, 사르트르, 스탕달, 보들레르, 카뮈, 볼테르, 바이런, 도스토예프스키 등이 모두 고아였다. 대통령, 수상, 왕들 중에 300명이나 고아 출신이다.
그래서 P 트루니에는 ‘창조적 고통’, L 슐레징어는 ‘불행한 아동기, 행복한 삶’, A 스토르는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서 역경과 고통을 통하여 되튀는 위대한 창조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6∼11)
김종환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
[김종환 칼럼] ‘개천에서 용 난다’가 옛말이라니…
입력 2015-10-10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