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기도 한 나의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와 떨어져 있는 것을 유난히 불안해하는 아이였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옷장에 있는 어머니 옷에 밴 냄새라도 맡아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너무 많은 자녀들 때문에 육아와 살림에 지쳐 있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다고 해서 늘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곤하고 짜증스러워 보일 때가 많았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해서 행복했던 기억보다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이 더 많다. 아무리 많이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나와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했던 어머니, 친구, 애인,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던 아들을 떠올려 본다. 사랑은 주는 만큼 오는 게 아니기도 했다. 어쩌면 많이 사랑할수록 진공청소기처럼 점점 더 많이 빨아들이려 해서 결핍감이 컸던 것일 수도 있다.
가톨릭 사제이기도 했던 리 호이나키는 “사람은 반드시 홀로 행동한다. 그것이 필연이고 궁극이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고 말했다. 홀로 행동하는 것이 필연이고 궁극이라는 사실을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랑 같은 건 하지 말고 방어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게 아니라, 놀랍게도 “그래서 사랑을 한다”라니.
이 말을 뒤집어서 새겨본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가족을 위해, 애인과 친구를 위해 사랑의 이름으로 행한 많은 일들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그들이 원했던 일일까? 그 대가로 나는 무엇인가를 돌려받고 싶었던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많은 일을 하지 않는 게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그래서 사랑을 한다
입력 2015-10-09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