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피오리나 이사님을 전통 한국식으로 대접하고 싶어 하시는데 남자를 원하는지 물어보라고 하십니다.”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2차 토론회 이후 공화당 내 유력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칼리 피오리나(사진)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가 과거 자서전에 소개한 ‘기생 파티’ 일화의 한 대목이다. 피오리나는 2006년 국내에도 출간된 자서전 ‘힘든 선택들(Tough Choices)’에서 1990년대 초 미국 AT&T 자회사의 이사로 방한했을 때 L그룹 계열사 접대 자리에서 기생파티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피오리나는 당시 초청자 측의 비서가 식사·술시중을 들 사람으로 여성 대신 남성을 원하느냐고 귀엣말로 물었다고 전했다. 낯선 물음에 당황한 피오리나는 “따로 그럴 것 없이 보통 한국인 사업가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하면 된다”고 답했다.
한국주재 미국인 직원에게 사장 비서의 말뜻이 뭐냐고 묻자 직원은 “기생 파티를 말하는데, 방바닥에 앉아서 위스키를 많이 마신다”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또 “(기생 파티에) 여성(게스트)은 절대 초청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식으로 준비할 줄 알았다”면서 몹시 당황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오리나는 또 “내가 여성이라는 게 도착 순간부터 이슈였다”며 “L그룹 계열사에도 여성들이 많았지만 모두 흰 장갑과 작업복 차림이거나 엘리베이터 운전자, 혹은 비서들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회사 건물에 들어서자 모두 쳐다보고 수군거렸다”면서 “L그룹 사람들은 거래처 측 파트너가 젊은 여성인 사실에 회의적인 표정을 짓곤 했다”고 기억했다.
그렇게 앉게 된 기생파티 자리는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피오리나는 “한국에서는 술을 권하는 게 존경의 표시이자 동시에 술 시합이었다”며 자신에게 끊임없이 건배 제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무례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술을 받다 보니 위스키가 8잔이나 쌓였다.
피오리나를 구해준 건 자신을 시중들던 접대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완벽한 영어로 “체면을 잃어선 안 된다. 과음하거나 몸을 상해선 안 되니 도와주겠다”면서 미리 갖고 들어온 나무 그릇에 몰래 술을 따라 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피오리나는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있더라”면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상대 기분을 상하지 않게 술잔을 테이블 밑으로 사라지게 했다”고 덧붙였다.
피오리나는 기분이 언짢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날 한국인 주최 측은 따뜻했고 엄청 마음에 들었다”면서 “나는 내 상대 기생과 더불어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그 시간을 완벽하게 즐겼다”고 회고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피오리나, 남자를 준비할까요?”… 한국식 ‘기생파티’ 자서전서 경험 소개
입력 2015-10-08 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