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역사학계·야당·진보세력의 극심한 반발에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배경에는 보수-진보 진영의 ‘권력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뒤 유권자가 되는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전리품’으로 놓고 벌이는 이념전쟁이다.
보수 진영은 친일과 독재라는 ‘역사적 아킬레스건’ 대신 반공과 경제성장의 ‘성과’를 강조하고 싶어 한다. 검정 체제가 자리를 잡은 뒤 역사교육에서 주도권을 행사해 온 진보 진영으로선 양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런 보혁 대결 구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있다. 국정화 정국을 청와대가 밀어붙이고 있다는 관측에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다.
◇“여론, 불리할 게 없다”=정치권은 이미 총선 모드에 돌입했다. 보수 진영이 ‘국정 전환’을 하고 싶어도 여론이 좋지 않다면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국정화를 강행하는 데에는 ‘여론이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학생·학부모는 국정 전환을 바란다”(지난달 14일),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의 “(좌편향 교과서를) 국민이 우려하고 학부모는 물론 학생조차 국정 단일화를 요구한다”(지난달 22일)는 발언은 이런 기류를 보여준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자체 여론조사를 해보니 입시를 염두에 둔 학부모들이 단일 교과서를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2, 3일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도 언급했다. 여론조사기관 ‘타임리서치’에 의뢰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국정화 찬성’은 47.2%, ‘반대’는 42.9%였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역사 교수·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반대가 압도적이지만 ‘밑바닥 민심’은 되레 찬성이 많다는 결론을 정부와 여당이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국정화 추진 명분·논리 완성됐다”=이 논란의 정점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국정화에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다. 한 간부는 “뜬금없는 시도” “시대흐름에 역행”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간부는 “교육부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다. (청와대가 정하면 교육부는) 논리를 만들어 뒷받침을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지원사격이 본격화되자 교육부는 그동안 준비해 온 명분과 논리를 꺼내 들었다. 교육부는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에게 현행 한국사 교과서 분석 자료를 제공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이란 제목의 이 자료에는 정부의 국정화 명분이 집약돼 있다. 검정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국정 전환을 위한 작업을 상당 기간 진행했음을 보여준다.
자료는 현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18가지 주제별로 비교해 분석했다. 동학농민운동, 식민지근대화론, 일본군 위안부, 반민특위와 친일인사, 광복 직후 한반도 상황, 대한민국 정통성, 6·25전쟁, 이승만에 대한 평가, 제주 4·3사건, 5·16 군사정변, 베트남 파병, 새마을운동, 10월 유신, 해방 후 남한의 농지개혁과 북한의 토지개혁, 북한에 대한 서술, 대기업과 기업인의 역할 등이다.
일본군 위안부 기술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교과서가 일본군 위안부와 정신대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광복 직후 한반도 상황에서 ‘소련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으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또 “검정 교과서는 집필진의 60%가 좌파 인사”라며 “국정화해도 친일독재를 미화하지 않으며 획일화된 역사관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학부모들 단일교과서 선호”… 여론 유리 판단
입력 2015-10-08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