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자신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입장이 오락가락한 사실을 국정감사장에서 숨기려 했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양승조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애초 자료의 일부만 국회에 제출하고,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이 “우리와 처음 만났을 때는 국민연금 측이 합병에 부정적이었으나 이후 입장을 뒤집었다”고 지적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자료 제출 미적댄 국민연금=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달 14일 국감에 출석해 “엘리엇이 소송을 걸더라도 국민연금 판단으로는 승소할 자신이 있다”고만 답하고 3월의 회동 사실과 논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양 의원이 엘리엇과 접촉한 자료를 모두 제출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하자 국민연금은 그동안 엘리엇에서 받은 공문 일부를 지난달 25일 제출했지만, 여기엔 합병이 공식 발표된 7월 이후 국민연금에 접수된 엘리엇의 서신 4건만 포함돼 있었다. 양 의원실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처음 제출한 자료에는 그동안 보도된 내용뿐이어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은 양 의원이 계속 추궁하자 후반기 집중감사가 시작된 뒤인 지난 3일에야 6월 이전 자료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지난 2월 접촉한 내용을 포함해 치밀하게 합병에 대비해 온 과정이 드러나 있었다. 특히 지난 6월 3일자 공문에는 엘리엇이 국민연금을 향해 합병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고 추궁하면서 3월 양자가 접촉해서 나눈 내용을 공개한 부분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엘리엇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당시로선 합병에 대해 얘기할 타이밍이 아니었다”며 “엘리엇이 보내온 공문도 결국 양 의원실에 모두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석연찮은 의결권 전문위 배제=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 문제로 소송을 벌일 경우 국민연금이 합병을 찬성하는 과정에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배제한 점을 문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지난 7월 14일 국민연금에 보낸 공문에서 “의결권 전문위는 이번 합병과 같이 까다롭고 논란이 다분한 사안에서 입장을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데, (전문위가 열리지 않은 것은)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며 염려스럽고 명백히 부당하다”고 비난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이 합병 과정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압박했지만, 이후 지난 7월 17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는 삼성이 큰 표 차로 승리해 엘리엇이 이를 문제 삼을 여지는 줄어들었다.
관건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을 맡는 국부펀드의 성격상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서 다툴 여지가 있느냐다. 엘리엇은 지난 7월 24일 국민연금에 보낸 공문에서 전문위를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결정한 점을 지적하며 “본 합병안은 장래 투자자에 대한 공정한 대우와 국민연금의 공공정책에 대한 핵심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투자자와 우리 정부가 ISD에서 다툴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이 이해당사자들과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이런 거래를 계속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더 견고해질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지방 백상진 기자 fattykim@kmib.co.kr
국민연금 ‘합병 입장 오락가락’ 국감서 숨기려 했다
입력 2015-10-08 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