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워킹맘은 등하교 전쟁… 강남 ‘델따쥬 서비스’ 등장

입력 2015-10-08 02:38

“숫제 전쟁이에요.”

서울 강남구에 사는 워킹맘 A씨(41)는 여덟 살과 열두 살 자녀의 등하교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은행원인 그는 매일 오전 7시쯤 회사원인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선다. 3억원 이상 남은 아파트 전세대출금 등을 감당하려면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A씨는 “남편 직장과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집값 비싼 강남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학교가 일찍 시작할 때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는데, 지난 3월 문제가 생겼다. 서울의 411개 초등학교가 일제히 ‘9시 등교’를 시작했다. 출근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더 자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설득해 초등돌봄교실로 보냈다. 평소처럼 일찍 학교에 간 아이들은 친구들이 다 늦게 온다며 울상이었다. 유치원 졸업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준 시댁에 다시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었다.

문제는 등하교만이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도 만만찮았다. 두 달 가까이 고민한 끝에 A씨는 지난 4월 말 시간당 1만원을 주고 등하교 도우미 2명을 고용했다. 이제 아이들은 오전 8시30분쯤 도우미와 함께 학교로 간다. 하교 때는 학교 앞에서 도우미를 만나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 수업 중간에 도우미와 저녁도 먹는다. 오후 7∼8시쯤 학원을 나서면 도우미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A씨는 7일 “도우미 2명에게 한 달에 120만∼130만원을 주고 있다”며 “부모가 챙겨줄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상황이 이런 걸 어쩌겠느냐”고 했다.

맞벌이 증가, 9시 등교, 학원 순례 행렬 등이 맞물린 ‘등하굣길 통학전쟁’이 ‘등하교 도우미’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가장 큰 원인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난 것이지만, 교육정책의 변화, 아이들의 ‘학원 순례’ 세태,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의 증가에 따른 불안감까지 버무려졌다. 지난해 배우자가 있는 1182만 가구 가운데 맞벌이 가구는 절반 가까운 518만 가구가 넘었다.

불안과 불편은 시장을 창출했다. 최근 서울 강남 일대에는 자녀의 등하굣길, 학원 오가는 길을 책임지는 ‘델따쥬 서비스’가 등장했다. ‘델따쥬’는 지난해 2월 설립된 전문 경호업체의 이름이다. ‘데려다준다’는 말을 변형해 사명(社名)으로 사용하면서 등하교 도우미 서비스를 뜻하는 말처럼 쓰이고 있다.

부모가 카카오톡이나 전화로 이 회사에 시간·장소를 예약하면 기사가 차를 몰고 온다. 아이를 태우고 학원이나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 회당 편도 1만7500원(거리 5㎞·30분 이내)이고 더 멀면 추가요금이 붙는다. 월 2500원을 추가하면 스마트폰으로 아이가 타고 있는 차량 내부를 실시간 볼 수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한 학부모는 “남들 다 가는 학원에 안전하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다 선택했다. 엄마들끼리 모여 학원 앞에서 마시는 커피값을 아낀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외에도 등하교 도우미를 연결해주는 업체는 이미 수십 곳이 성업 중이다. 한 도우미 연결업체 관계자는 “초등학생뿐 아니라 밤늦게 귀가하는 여고생을 위해 도우미를 문의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