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스를 신어버렷!’ ‘남사친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음ㅋㅋㅋㅋㅋ’ ‘푸하하 살려줘 이거 모야 >-<)’ ….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젊은 누리꾼들이 쓰는 말이다. ‘검스’는 ‘검은색 스타킹’, ‘남사친’은 ‘남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이고, ‘모야’는 ‘뭐야’의 모음 글자를 바꾼 것이다.
인터넷 통신 언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지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한글 파괴의 주범으로 몰렸으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40, 50대 중년도 ‘넵’ ‘꿀잼’ ‘핵공감’ 같은 말에 익숙하며,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적극 쓰기도 한다. 노년층 또한 통신 언어를 접하는 기회가 늘었다. 통신 언어가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 사이 인터넷 이용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편하게 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와 같은 SNS를 통해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고, 재미있는 글이나 동영상으로 공감과 유대를 강화해 나간다. 인터넷이 삶의 재미를 찾고 다른 사람과 적극 소통하게 해 주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맡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그림, 동영상, 소리를 통해 교류도 하지만 소통의 핵심은 글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한글은 인터넷에서 다른 어떤 문자보다도 편리하면서 효과적으로 쓰인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음소 문자이면서 발음 단위로 자음과 모음을 모아쓰도록 만든 한글의 장점 덕분이다.
한글을 모아쓰지 않고 ‘ㅁㅜㅓㅇㅑ’나 ‘ㅇㅣㅅㅅㄷㅏ’처럼 풀어 적었다면 모음을 바꾸거나 자음을 더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 ‘뭐야’ ‘있다’로 적다 보니 인터넷에서 ‘모야’ ‘있당’으로 적으면 글자 변화가 한눈에 쉽게 드러난다. 누리꾼들은 익숙한 글자 모양을 바꿈으로써 재미와 신선함을 느끼게 되고, 또 귀엽거나 친근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글자 모양이 고정된 한자(漢字)나 일본 글자로는 이런 재미를 누리기 어렵다.
한글 모아쓰기 방식은 긴 표현을 짧게 줄이는 데도 유리하다. 누리꾼들은 ‘금방 사랑에 빠지다’를 ‘금사빠’로, ‘깜짝 놀라다’는 ‘깜놀’로 줄여 쓴다. 최근 ‘혼자 마시는 술’을 ‘혼술’로 줄이기도 한다. 긴 표현의 첫 글자를 모아서 줄임말을 만들기 때문에 본말을 기억하기 쉽고, 줄임말 자체가 발음과 형태의 면에서 안정적이다. 이런 방식의 새말이 수없이 많으며, ‘남친(남자 친구)’ ‘비번(비밀번호)’ ‘정모(정기 모임)’ 등은 이미 일상어로 뿌리내렸다. 결과적으로 통신 언어는 한국인의 풍부한 언어생활에 도움이 된다.
SNS에서 휴대전화로 입력할 때 ‘네, 잘지내고있어요. 잘지내시죠?’처럼 여러 어절을 붙여 적는 일이 흔한데, 이 때문에 띄어쓰기 규정이 더 혼란스럽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붙여 적기는 글자 입력을 빠르고 편하게 하려는 언어 경제성에 따른 의도적 용법이다. 그 자체가 통신 언어의 문제점이 아닐뿐더러 음절 단위 모아쓰기 덕분에 읽는 데 별 무리가 없다. ‘ㅋㅋㅋ’ ‘ㅎㄷㄷ’로 적는 것을 한글 파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 또한 입력의 경제성과 재미를 위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점은, 경제성과 오락성을 중시하는 통신 언어를 쓰면서도 상황에 따라 격식과 규범에 맞게 언어를 정확히 쓸 수 있는 ‘다중 언어 능력’을 충분히 기르는 것이다.
21세기 정보통신 시대에 한글은 풍부한 언어생활과 재미있는 소통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보배다. 일상의 격식적 글쓰기에서 잠시 벗어나 SNS에서 한글을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한국인에게 크나큰 행운임이 분명하다.
이정복 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사풍향계-이정복] SNS 시대에 더 빛나는 문자, 한글
입력 2015-10-08 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