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올해 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설이 돌자 삼성물산과 국민연금에 수차례 공문을 보냈다. 삼성물산에는 지속적으로 ‘제일모직과 합병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하라고 요구했고,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에는 합병에 함께 반대할 것을 촉구했다. 합병안이 통과되자 엘리엇은 의사결정 근거를 대라며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제일모직과 합병 안 하겠다고 확인해 달라”=국민연금이 양승조 새정치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2월 4일 삼성물산에 제일모직과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문의했다. 삼성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자 2월 16일과 27일, 3월 11일 등 계속 서신을 보내 “경영진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없을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길 바란다(We are by means of this letter seeking your formal confirmation that no merger between the Company and Cheil Industries is being, or will be contemplated by the Directors)”고 끈질기게 추궁했다. 엘리엇 측은 “투자부서 관계자가 아닌 경영진의 입장을 듣고 싶다”며 만남을 요구했다.
이런 요청에 삼성물산은 4월 9일 이영호 최고재무책임자(CFO)와의 자리를 만들었다. 엘리엇은 이 자리에서 합병 반대 입장을 적극 표명했다. 하지만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엘리엇은 다음날 바로 서신을 보내 유감을 표명하고, 여러 자료를 제시하며 합병이 주주에게 손실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컨설팅회사 등의 보고서를 인용해 삼성물산 주가의 현재 적정 가치를 10만597∼11만4134원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제일모직 가치는 주당 6만3353∼6만9942원으로 분석됐다고 덧붙였다. 5월 26일 제일모직 주가가 18만8000원으로 치솟았지만 고평가된 것이라고 강조하며 합병 비율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 요구→합병 책임 추궁=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10%가량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도 접촉했다. 6월 3일 엘리엇이 국민연금에 보낸 문서를 보면 3월 18일 기금운용본부의 팀장들과 처음 만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7.12% 보유하며 3대 주주로 올라섰다. 2월에만 해도 약 3%를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지분을 늘렸다. 이때 보낸 서신을 통해 엘리엇은 3월 만남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며 함께 반대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했다.
7월 17일의 삼성물산 임시주총을 앞두고 엘리엇은 국민연금에 더욱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했다. 7월 8일에는 전날 국민연금과 의결권 자문 계약을 맺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이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를 권고한 사실을 강조하며 국민연금도 반대표를 던지도록 거듭 요구했다.
바로 다음날 또다시 보낸 공문에서 엘리엇은 “이 합병은 불공평하며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합병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또는 경영진이 삼성물산 주총에서 합병 찬성에 투표한다면 삼성물산의 주주 및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즉각적이고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명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경우 한국 주식시장과 국제적 위상이 영구적으로 실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총 사흘 전인 14일엔 합병안 통과로 엘리엇이 손해를 입을 경우 국민연금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엘리엇은 전문위원회가 합병안 투표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민감한 사안을 결정할 때는 외부 인사로 구성된 전문위원회 표결을 거치나 이번엔 투자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렸다. 국민연금은 SK와 SK C&C 합병 당시엔 전문위원회를 열고 의결에 따라 반대로 뜻을 모았다.
더불어 국민연금이 합병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 엘리엇이 입는 손해는 국민연금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못 박았다.
합병이 성사되자 엘리엇은 7월 24일 서면을 통해 국민연금에 합병안 찬성 근거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을 대표한 투자위원회의 합병 찬성 결정이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거나 신의성실에 기초해 객관적으로 내려진 판단 혹은 주요 핵심 사항을 제대로 분석해 내놓은 결정이라 생각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8월 11일엔 지난 서신에 답변이 없었음을 언급하며 다시 한번 합병 찬성 이유를 밝히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합병에 대한 정밀조사, 삼성물산 주주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을 포함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달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엘리엇이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통해 한국 정부를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단독-엘리엇, 국민연금 압박] 엘리엇, ‘3월 미팅’ 거론하며 “반대표 던져라” 계속 요구
입력 2015-10-07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