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자유무역협정) 우등생’이었던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로 일본에 밀릴 처지가 됐다. 현 정부 초기까지 미국의 구애에도 TPP 협상 참여를 주저하면서 정부가 실기(失期)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은 당장 TPP를 지렛대 삼아 한국과 중국 등에 시장 개방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정부는 TPP 타결에 따른 대외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미, 한·중 FTA 등을 체결하면서 일본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일본이 TPP에 가입하면서 (한국보다) 다소 유리한 위치에 섰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TPP 최초 참가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전 정부 당시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초만 해도 미국은 한국 참여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투자인프라은행(AIIB) 가입을 선언한 지난 4월 즈음해서 기류가 확 바뀌었다. 문재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지난 4월 1일 미국을 방문해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대행을 만나 TPP 가입을 타진했지만 성과 없이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국인 일본이 TPP에 가입함에 따라 역내 무관세 혜택으로 일본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핵심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던 TPP 회원국은 누적 원산지 기준에 따른 무관세 혜택을 보기 위해 다른 TPP 회원국의 부품을 사용하는 쪽으로 수입처를 바꿀 수 있어 한국의 부품 수출이 위축될 수도 있다.
TPP를 타결지은 일본은 당장 TPP를 지렛대 삼아 TPP에 가입하지 않은 한국과 중국 등에도 시장 개방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TPP의 후발 참가국은 일본을 비롯한 12개 최초 참가국들과 사전 협의를 벌여 모든 기존 협상국들에 교섭 참가를 승인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공산품과 가전제품 등의 관세 인하를 요구할 수도 있으며 이는 한국 정부로서 다소 난처한 요구가 될 수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이런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뒤늦게 TPP 참여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후발 참여국으로 값비싼 입장료를 낼 수 있음을 감안하면 참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도 이날 국정감사에서 “TPP는 우리 경제에 플러스가 되는 점도 있지만 마이너스가 되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서윤경 기자
이종선 기자 zhibago@kmib.co.kr
[TPP 타결 이후] TPP 가입 실기<失期> 논란
입력 2015-10-07 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