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의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목판본으로 발간됐다. 당시 200부 이상 발행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존하는 것은 딱 한 부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을 간송 전형필이 사들여 현재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다. 몇 해 전 또 하나의 해례본인 ‘상주본’이 발견되기도 했으나 근래 화재 등으로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간송 소장 해례본은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일부에서 남대문 대신 국보 1호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바로 이 해례본이다.
한글날을 앞두고 간송재단과 교보문고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복간해 판매한다. 그동안 해례본은 전시장에서 유리벽 안으로 바라봐야만 했는데 복간본이 만들어짐에 따라 일반 시민들도 해례본을 직접 만져보고 소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해례본은 모사본(베껴 쓴 것)이나 영인본(복사본)으로 유통돼 왔으며, 마지막 영인본이 나온 것도 60여년 전인 1953년이다.
6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허균 교보문고 편집장은 “간송 보관본의 현재 상태 그대로 복원하는, 이른바 ‘현상복제’ 방식으로 복간을 했다”며 “책의 색감과 질감까지 그대로 살려 원본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고 설명했다.
복간본은 한지를 사용해 고서의 촉감을 살렸으며, 제본도 네 군데 구멍을 뚫어 실로 묶는 원본 방식을 따랐다. 다만 간송본은 본문 뒷면에 낙서가 된 페이지가 다수 있는데, 복간본에서는 낙서를 모두 제거해 읽기 쉽도록 했다.
간담회에 동석한 전인건 간송재단 사무국장은 “그간 사진촬영 등으로 만들어진 영인본과 달리 현재 소장 중인 원본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 복간”이라고 평가하면서 “국민 모두가 페이지를 넘겨가며 세종의 애민사상과 문화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례본 복간과 함께 해례본 해설서도 발간됐다. 훈민정음 연구자인 김슬옹 교수(미 워싱턴 글로벌 유니버시티)가 집필한 해설서는 해례본에 대한 한글·영문 번역문을 수록했으며, 한글 창제 배경과 과정, 해례본의 구조와 내용, 간송과 해례본 소장에 얽힌 역사 등을 충실하게 담았다. 원로 국어학자인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감수를 거쳐 학문적 엄밀성을 기하는 한편 중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는 게 특징이다.
복간 해례본은 이날부터 서점에서 판매된다. 복간본과 해설서를 박스에 담아 판매하는데, 가격이 25만원이다. 교보문고 측은 “제작비가 보통 책들의 2배 이상 들어가 가격이 비싸졌다”며 “향후 보급판 출간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 그대로 복간… 한지로 촉감 살리고 실로 묶어 고서 느낌 물씬
입력 2015-10-07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