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범] 한복의 진화

입력 2015-10-07 00:30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 입기가 유행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복 입기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한복을 입고 해외여행에 나선 여성이 화제가 되는가 하면, 대학에 한복 입기 동아리가 있다고도 하고 아예 한복놀이단이라는 꽤 알려진 단체도 있다.

이들의 한복 입기는 확실히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한복은 더 이상 예복이나 명절 나들이옷이 아니다. 완전히 일상복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생활 속의 패션 아이템으로 한복을 즐기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한복 입기는 놀이인 것이다. 어쩌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코스프레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생활이 놀이이고 놀이가 생활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매우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우리의 전통을 소중하게 다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이들에게서 그동안 우리 한복이 갇혀 있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한복은 더 이상 일상복이 아니다. 우리 옷이 서양 옷으로 대체된 지는 오래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한복의 존재방식은 둘 중 하나다. 예복이나 명절 옷으로 제한적으로 입혀지거나, 아니면 전통을 표상하는 민속의상으로서 문화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제는 한복을 예복이나 명절 옷으로 입는 일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만큼 어쩌면 오늘날 한복의 거의 유일한 용도는 민속의상으로서의 문화적 표상뿐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표상으로서의 한복이란 결국 현실에서는 입지 않지만, 전통문화의 아이콘으로 각종 행사에 선보이거나 해외에서의 쇼를 통해 ‘한국의 미’를 알린다는 식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한복을 민속의상의 틀에 가두고 전통을 프로파간다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마침내 그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알쏭달쏭한 ‘한복의 세계화’라는 구호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한복에 과도하게 민족주의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한다. 대신에 시대에 따른 한복의 변화를 좀더 유연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한복은 비록 우회적인 방식이지만 나름대로 진화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한복이 입는 옷에서 보는 옷으로, 보는 옷에서 노는 옷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보는 옷이란 사극 속의 스펙터클로서의 한복을 가리키며 노는 옷이란 최근 젊은이들의 한복 입기 놀이를 말한다. 옷이 입는 것이라는 거야 만고불변의 진리이겠으나 관점을 좀 달리하면 옷의 다양한 존재방식을 통찰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젊은이들의 한복 입기 놀이 속에서 한복의 새로운 진화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 관점으로의 포섭이다. 한국의 미를 알리기 위해서라든지 전통을 사랑하는 젊은이라는 식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과연 한복 입고 해외여행하기는 한국의 미를 알리기 위한 것일까. 젊은이들이 한복을 입고 노는 것은 전통을 사랑해서일까. 나는 그들이 그런 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규정하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억압해버릴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나는 한복이 나름대로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미와 전통의 계승, 한복의 세계화 같은 구호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젊은이들의 자발적 쾌락과 도전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젊은이들의 한복 입기 놀이에서 ‘입기’보다 ‘놀이’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최범 디자인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