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준협] 소비 없는 성장이란 없다

입력 2015-10-07 00:20 수정 2015-10-07 18:10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관 주도의 급조된 보여주기식 행사에 불과하다거나, 유통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의 것을 무리하게 접목시키려 한다거나, 쓸 돈도 없는데 지갑만 열라는 대책 아니냐 등 비판 내용도 참으로 다양하다. 지난 8월 14일 광복 70년을 기념하여 대체휴일을 지정할 때도 그랬고, 작년 7월 ‘가계소득 증대세제 3종 세트’를 도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 상당수는 대체휴일에도 출근할 수밖에 없으니 공무원과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만 좋은 일이라거나, 근로소득 증대세제와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효과가 없고 배당소득 증대세제는 대주주 부자들에게만 좋은 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부분 맞는 지적이고,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토록 일관되게 소득과 소비를 살려 경기를 되살리겠다고 노력한 정부가 또 있었던가? 요즘처럼 제품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아 경기 침체에 빠져 있을 때에는 가계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는 게 정답 아닌가? 맘껏 비판하되 소득과 소비를 늘리는 해법을 찾는 계기로 삼는 게 지혜로운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가 소비 침체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가계소득이 정체되어 쓸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가계소득이 증가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제품 경쟁력이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관광·의료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육성도 지지부진하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기업에만 집중되고 가계로는 흘러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며, 가계부채 급증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쓸 돈이 줄어드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중산층·서민의 경우 쓸 돈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그 부족한 돈조차 맘껏 쓸 수 없는 처지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은퇴기에 접어든 베이비붐세대가 노후 불안으로 소비를 줄이고 있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사교육비 부담으로 문화여가 소비를 줄이고 있다. 비정규직이 늘고 고용의 질이 악화되면서 미래소득이 불확실해지는 것도 지갑을 닫는 요인이다. 소득분배 악화도 지적되어야 한다. 저소득층은 100원 생기면 100원 다 쓰는 반면 고소득층은 절반만 쓰기 때문이다. 노후 불안과 주거 불안, 일자리 불안, 사교육비 부담, 소득 분배를 개선하지 않고는 소비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반면 고소득층은 쓸 돈은 있는데 쓸 데가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매달 587만원을 벌어 323만원은 소비하고 264만원을 저축하는데, 저축액의 10%만 더 소비하더라도 국내총생산이 7조원 이상 증가하고 일자리가 16만개 늘어난다. 고소득층이 지갑을 열면 일자리가 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얘기며, 소비 활성화 대책에서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가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소득층이 더 많이 소비토록 지원하되 그 혜택이 중산층 서민으로 흐르는 경제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소비는 1997∼1998년 외환위기와 2003∼2004년 카드사태를 겪으면서 장기 침체에 빠졌고, 2012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1%대 성장에 머물며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비가 ‘1%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기 회복도 어렵고 선진국 도약도 가능하지 않다. 더 이상 ‘소비 없는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허상에 불과함을 직시해야 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경제시평’ 필진으로 이준협 실장이 새로 참여했습니다. 이 실장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