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80) 전 새누리당 의원은 낮은 검찰청사 계단조차 제대로 오르지 못해 무릎을 부여잡았다. 5일 오전 10시22분, 예정시각을 20여분 넘겨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에 출두한 이 전 의원은 포토라인에 서서 “왜 내가 여기 와야 하는지 이유를 명확히 모르겠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포스코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받았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단호히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답했다.
이 전 의원이 소환된 이유조차 모르겠다고 항변한 것과 달리 검찰은 이미 포스코와의 유착을 다각도로 입증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검찰 관계자는 “오늘 조사는 본인의 변소를 듣고자 하는 것”이라며 “본인이 수사 상황을 보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범죄 혐의는 사실상 입증됐고, 적용법률 문제만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날 검찰은 그간 의혹만 무성하던 이명박정권의 포스코 회장 선임 개입이 사실임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이 전 의원이 2009년 포스코 회장 교체기에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과 일종의 ‘파워게임’을 벌여 이겼고, 결국 정준양(67) 전 회장의 선임을 이끌어냈다는 얘기다.
검찰은 정 전 회장 취임 이후 이 전 의원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포스코를 5년간 사유화했다고 본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5년간 포스코가 경쟁력을 잃고 재무구조가 악화된 원인과 책임은 이 전 의원과 정 전 회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광범위하게 드러난 정 전 회장의 비리가 회장직과 정치자금 간 ‘빅딜’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이 전 의원의 측근들이 소유·경영한 포스코 협력업체들의 급성장은 이런 모종의 거래 구조를 뒷받침한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의 지역구 사무소장 출신인 박모(58)씨가 실소유한 제철소 설비업체 티엠테크 등 3곳을 포스코의 변칙적 정치자금 조달 통로로 의심했다. 3곳이 기존 업체의 일감을 빼앗아 얻은 수익 중 약 30억원이 이 전 의원의 사무소 운영비 등으로 쓰였다고 검찰은 본다.
다만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얼마나 경제적 이득을 취했는지는 되레 부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협력업체가 3곳뿐이겠느냐”며 “취득 이익 액수와는 별개로 포스코의 재원 고갈 원인을 규명해 재발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 전 회장 선임 과정에 부당 개입했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아온 ‘왕차관’ 박영준(55)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차관의 포스코 외압 의혹에 대해서도 “일정한 역할을 한 건 확인이 돼 있다”며 “서면조사 방식은 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2008년 말∼2009년 초에 박 명예회장과 이구택(69) 전 회장을 비롯해 윤석만(67) 전 사장, 정 전 회장 등 포스코 핵심 인사들을 잇따라 접촉한 사실을 확인한 상태다. 당시 박 전 차관은 청와대를 떠난 ‘자연인’이었기 때문에 소환 조사를 하더라도 참고인 신분을 갖게 될 전망이다.
검찰 수사팀은 내부적으로 이 전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을 세웠다. 전직 대통령의 친형이 2번이나 구속된 사례는 아직 없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의 조사 결과에 따라 지금까지 4차례 소환 조사한 정 전 회장을 다시 부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경원 나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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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출두 이상득 “여기 온 이유 모르겠다” 檢 “혐의 사실상 확인… 법률 적용만 남아”
입력 2015-10-0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