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경유 승용차를 허용하면서 유럽연합(EU)의 ‘클린 디젤’ 기준을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 소비자들은 그런가보다 했다. 전문가들도 환경 분야에서 여러 모로 앞서가는 EU가 택한 정책이니 일단 믿어주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렇지만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기극이 밝혀지면서 모두가 속았다는 배신감에 할 말을 잃었다. ‘클린 디젤’이라는 것은 형용모순이고 눈속임에 불과했다.
다 같이 속았지만, 더 한심한 것은 한국 정부다. 친환경차로 경유차에 특화한 유럽을 견제하기 위해 경유차에 대해 유럽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미국, 일본과 달리 우리 정부는 EU의 클린 디젤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EU는 경유차에 휘발유 차 대비 약 3배 완화된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폭스바겐 경유차의 주행 중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그 느슨한 기준으로도 최대 40배 초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경유차 우대정책 시행 후 지난 수년간 수도권의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오염도는 다시 높아지거나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경유에 대해 휘발유보다 낮은 세금을 유지하고, 2009년부터는 환경개선부담금도 면제해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부터 경유택시 보조금 지원 정책까지 도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와 함께 클린 디젤차를 버젓이 친환경차 반열에 올려놓았다.
경유차만 환경에 나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가 있을 뿐 모든 차는 환경에 해롭다. 전기차도 발전 과정의 대기오염을 감안해야 한다. 타이어 분진과 기름 유출에 의한 토양·강·바다의 오염은 또 어떤가. 또한 자동차의 수많은 폐해 가운데 환경은 일부일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명 중 일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다. 자동차의 해악들을 지혜롭게 통제하면서 대중교통 확대, 승용차 공유, 이동 대신 정보통신 이용 등으로 자동차 이용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클린디젤’이라는 허구
입력 2015-10-06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