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6일] 믿음(6)-순교자의 믿음

입력 2015-10-06 00:14

찬송 :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359장(통 40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히브리서 11장 35∼40절

말씀 : 19세기 말엽, 대한제국은 미국 자본주의 문명의 풍요로움과 접촉하면서 복음을 수용하였습니다. 고종 황제가 미국의 개신교 선교를 윤허할 때 선교의 범위를 ‘교육과 의료사업’으로 제한했던 것을 보면 그는 복음보다는 미국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대한제국의 부국강병을 도모하고자 했음이 분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 교회는 선험적 자본주의자’였다는 이화여대 양명수 교수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순교자의 믿음’보다 ‘정복자의 믿음’을 더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만사형통 속에서 믿음의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사람들이 보면 순교자는 실패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순교자의 믿음’도 ‘정복자의 믿음’ 못지않게 소중한 믿음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참고 견디는 순교자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히 11:1b). 히브리서 11장 35∼40절에서 순교자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실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 ‘어떤 이들은 악형을 받으면서도 석방을 단호히 거절하고’ 여기서 악형은 헬라어로 ‘튐파논’인데 고문대 위에 사람을 묶어 놓고 때려서 죽이는 형벌입니다. 순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살려 줄 테니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회유를 거절하고 부활의 삶을 얻고자 주님이 가진 형극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둘째,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당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이 시련을 당했습니다(행 16:25). 그러나 그들은 실망치 않고 오히려 기도와 찬송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이들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딤후 4:7∼8).

셋째, ‘어떤 이들은 돌에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돌로 치는 행위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처형방법이고 톱으로 켜는 것은 이방세계에서 행해졌던 야만적인 사형방법이며 칼로 치는 것은 가장 흔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순교적 믿음을 지닌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어떤 이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였으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박해를 피해 갑바도기아, 본도, 비두니아로 흩어진 성도들이 이렇게 살았습니다(벧전 1:1∼3). 이들의 신앙과 삶에 감동된 사도 베드로는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눈물로 그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순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히 11:38). 천국만이 그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정복자의 믿음도 귀합니다. 마찬가지로 순교자의 믿음도 소중합니다. 둘 다 믿음으로 승리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러나 그것이 안 되는 일이라면 받아 드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갑성 목사(신길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