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6일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케냐 국적의 여성 A씨(40)가 다급한 표정으로 뛰어 들어왔다. A씨는 “케냐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아 중국으로 팔려가게 됐다”며 우리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다. 난민인정신청서를 작성하던 A씨의 배는 불룩했다. “납치범에게 성폭행당해 아이를 임신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만삭의 몸으로 아프리카 케냐에서 인천공항까지 오게 된 사연을 이렇게 진술했다. 그의 남편은 2007∼2008년 케냐 대선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이 반대파를 무력 진압한 사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증언하려다 실종됐다. A씨는 “나처럼 남편이 실종된 여성이 여럿 있었다. 그들과 함께 실종된 남편을 찾아다니다 괴한에게 납치됐고, 6개월간 감금과 성폭행을 당하다 뱃속 아기와 함께 중국에 팔려가는 신세가 됐다”고 주장했다. 인천공항은 홍콩공항에 도착하기 전 경유지였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소는 A씨에게 ‘난민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진술에 설득력이 떨어져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법무부도 같은 판단을 내리자 A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정부 결정을 뒤집고 A씨를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하태헌 판사는 A씨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하 판사는 “A씨가 동행자를 따돌리고 난민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남편 실종시기 등에 일부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A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이어 “A씨가 고국에 돌아갈 경우 박해당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진정한 난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때 침해될 법익(法益)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난민) 본인과 가족의 생명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정부가 퇴짜 놓은 케냐 난민, 법원은 인정
입력 2015-10-05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