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이란 핵 합의안’ 美 의회 통과 이후… ‘중동 큰손’ 이란, 빗장 풀고 나온다

입력 2015-10-06 02:35
유엔 창립 70주년 기념 유엔총회에 참석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총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주요 6개국(유엔 안보리 5개국+독일)과 이란 간 체결된 이란 핵 합의안(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문턱을 넘음에 따라 JCPOA가 이행 단계에 들어섰다. 미 의회 통과 여부는 JCPOA의 최대 고비로 여겨져 왔다.

이에 따라 핵 개발 의혹에 따라 2006년부터 시작된 유엔 제재로 국제 정치·경제 무대에서 ‘퇴장’했던 이란의 복귀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對)이란 경제·금융제재가 풀리려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보고서가 채택되고 이란이 협정에서 약속한 핵프로그램 감축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이런 요인을 감안할 때 이란 제재가 해제되는 시기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잠재력에 너도나도 이란에=핵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세계 각국이 이란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협상 타결 사흘 만인 지난 7월 20일 이란 수도 테헤란을 찾아 에너지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가브리엘 부총리의 ‘지나치게’ 발 빠른 대응은 나치 대학살 등 과거사로 이스라엘과 특수한 관계인 독일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교장관도 이달 이란을 방문할 계획이다.

핵 협상 과정에서 이란에 가장 가혹한 핵프로그램 포기를 요구해 강경파로 꼽혔던 프랑스도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7월 29일 테헤란을 방문해 화해 메시지를 전했다. 프랑스 외무장관으로는 12년 만에 이란을 방문한 파비위스는 11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프랑스에 초청한다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서한도 전달했다. 지난달 7일에는 하인즈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핵 협상 타결 뒤 서방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이란을 방문했다.

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는 지난 8월 13일 아예 독자적으로 이란에 대한 금융·경제제재를 해제했고, 영국은 같은 달 23일 4년 만에 이란대사관을 다시 열었다. 일본도 양자 투자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각국의 이란 ‘구애’는 주로 경제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란 인구는 7월 현재 8182만명(미 중앙정보국(CIA) 추정)으로 이집트(8849만명)에 이어 중동 2위다. 구매력과 풍부한 자원으로 중동 최대 시장으로 불린다.

◇유가 바닥에도 이란 “증산”=이란의 원유 수출 빗장이 풀릴 경우 국제 에너지시장에 미칠 영향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의 자원부국이다. 2012년 EU의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이후 이란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100만 배럴 감소했다. 이미 공급 과잉인 국제 원유시장에서 이란의 복귀는 유가의 하향 압력을 더욱 증대시킬 것이 분명하다.

세계은행(WB)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수석경제학자 샨타 데이브라전 박사는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2012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1년가량 걸리겠지만 이란은 단기적으로 그동안 비축한 3000만∼4000만 배럴의 원유와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국제시장에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브라전 박사는 “이란의 원유시장 복귀는 국제 원유가격의 14%, 배럴당 약 10달러를 추가로 낮추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란 정부는 국제 원유가가 바닥이지만 증산으로 총수출량을 늘려 판매수익을 더 얻겠다는 입장이다. 세계은행은 원유 수출과 대외 무역 활성화로 내년 이란 경제성장률이 현재 예상치인 3%를 크게 초과한 5%,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올해의 배인 연간 3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운 중동의 ‘큰손’=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는 특히 중동 외교·안보 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원유 수출 재개 등으로 돈지갑이 채워진 이란은 중동 역내 갈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우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부에 대한 지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제재를 당하면서도 연간 수십억 달러의 자금과 인력·군사 장비를 아사드정부에 지원해 왔다.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아사드 대통령의 양대 지지세력이다.

시리아를 통해 이스라엘을 전략적으로 제어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에 대한 무기 지원도 늘 전망이다.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워싱턴 근동(중동)정책연구소’의 매튜 레빗 국장은 “이란의 지원으로 재정이 풍부해진 헤즈볼라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을 넘어 이라크와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세력 후원은 물론 그들과 함께 싸우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이라는 점에서 수니파의 종가격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친미 걸프연안국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사우디는 걸프 연안에 이란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를 위해 한때 탄압했던 반체제운동단체 ‘무슬림형제단’은 물론 터키에도 손을 내밀었다. 민간인 살상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음에도 이란과 연계된 예멘의 후티 반군에 대한 강력한 공습을 지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핵 협상 과정의 외교통로를 통해 미국과 이란 간 역사적 화해(rapprochement)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맹방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헤즈볼라·하마스 등에 대한 이란의 후원이 미국의 국익과 크게 상충된다는 점에서 핵 협상 타결이 양국 관계 개선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대응과 시리아 내전, 이라크 문제 등 역내 현안에서 미국과 이란이 좀 더 긴밀히 협의할 여지는 높아졌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의 파르잔 사벳은 “이란·미국 간에 화해보다는 데탕트(긴장완화)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