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정부가 통독 25주년 기념일(3일)에 맞춰 홈페이지에 게시한 자료에서 ‘통일이라는 꿈을 현실로 만든’ 11개 사건을 꼽았다. 이 자료는 1989∼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이들 사건이 일어난 달(月)을 열거하면서 ‘믿기 어려운 격동의 달들’이라고 소제목을 붙였다.
첫 번째 달은 1989년 5월이다. 그달 7일 동독에서 있었던 지방선거는 부정으로 얼룩져 동독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저항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같은 해 6월 27일 헝가리가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국경에 쳐놓은 철조망을 제거한 사건이 두 번째로 꼽혔다. 1989년 10월 9일의 라이프치히 월요시위가 뒤를 이었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수립 40주년 기념식 이틀 뒤 열린 이날 시위엔 7만명이 모였고, 동독인들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혐오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
네 번째는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다. 동독 공보담당 정치국원 귄터 샤보브스키가 서독으로의 여행 자유가 허용됐다고 발표하자 동독인들이 장벽 앞으로 몰려들면서 장벽은 붕괴됐다.
이어 11월 28일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독일과 유럽의 분단 극복을 위한 10개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은 서독 정부의 정책 목표가 통일로 기울기 시작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이듬해인 1990년 3월 18일 치러진 동독의 자유선거는 조기 통일론이 민심으로 확인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동독인들은 기독민주당(CDU) 주도의 로타르 드 메지에르 총리 정권에 통독으로 가는 길잡이를 맡겼다.
이틀 뒤인 3월 20일 서독 정부는 각의에서 동독과 경제·통화·사회통합 협약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7월에 이 협약을 발효함으로써 통일 채비를 서둘렀다.
1990년 7월 16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콜 서독 총리에게 독일이 통일 이후에 스스로 동맹을 결정하는 데 동의한다고 밝힌 것이 여덟 번째 사건으로 지목됐다. 다음 달 31일 동·서독은 900쪽 분량의 통일 협정에 사인하고 9월 12일 ‘2(동·서독)+4(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조약’ 체결을 이끌면서 마침내 10월 3일 0시를 기해 독일은 하나가 됐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독일 통일 25주년] 동독 선거부정 ‘자유·투쟁’ 열기에 기름 부었다… ‘통일 꿈’ 앞당긴 사건들
입력 2015-10-05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