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에 비추인 태양’ 설계한 황지해 작가 “위안부 할머니가 열두 살 때 바라본 고향 풍경 담았어요”

입력 2015-10-05 02:34
정원 ‘모퉁이에 비추인 태양’에 설치된 아트월(art wall).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타일 형태로 제작돼 걸려 있다(사진 위). 정원 툇마루 아래에 위안부 할머니의 발이 음각된 동판이 설치돼 있다. 트리플래닛 제공
황지해 작가
“위안부 할머니가 열두 살 앳된 소녀였을 때 바라봤을 고향 정원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저는 이 정원의 설계자라기보다는 할머니들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전달자라고 할 수 있겠죠.”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난지연못 뒤쪽에 있는 ‘모퉁이에 비추인 태양’이란 정원을 설계한 황지해(사진) 작가는 4일 이 정원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3일 ‘제1회 서울 정원박람회’ 개막에 맞춰 일반에 공개된 이 정원은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취지를 담고 있어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이란 부제가 붙었다. 150㎡ 규모인 정원의 중심 구조물은 산책로 쪽에 자리 잡은 어른 키 높이의 돌담장이다. 황 작가는 “우리 선조들이 만든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 있는 애양단(愛陽壇·태양을 사랑하는 단)을 편집한 담장”이라며 “모두가 햇빛을 받을 수 있고 옳고 정의로운 그런 세상을 원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담장에 담았다”고 말했다.

느티나무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콘크리트 아트월(Art Wall)이 있다. 이곳에는 ‘끌려가는 날’(고 김순덕·1995) ‘빼앗긴 순정’(고 강덕경·1995) 등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타일로 제작돼 걸려 있다. 정원 곳곳에는 접시꽃, 물망초, 찔레, 쑥부쟁이, 도라지, 개정향풀, 범부채, 등골나물 등 나비가 좋아하는 꽃과 한국 자생종을 심었다.

담장 앞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고 바로 앞에는 할머니의 주름지고 작은 발을 음각한 동판이 설치돼 있다. 주변 바닥에는 위안부의 삶을 한탄하고 일제를 원망하는 할머니들의 어록이 새겨진 가느다란 금속판 여러 개가 배치됐다.

황 작가는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이 툇마루에 앉아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다면 이 정원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작가는 세계 최고 정원박람회인 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2011년과 2012년 잇따라 금메달과 최고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오는 12일까지 이어지는 서울정원박람회에서는 초청작가 정원, 연예인 팬클럽이 만든 스타정원, 공모전 수상작 등 20개 정원을 포함해 80여개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