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도 서비스’ 홍보전 뜨거운 법조계

입력 2015-10-05 02:52
대법원이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홍보하려 만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이 뮤직비디오의 랩 가사는 판사들이 직접 만들었다. 아래 사진은 헌법재판소가 서울 지하철 교대역에 설치한 걸개 광고. 흥부와 제비를 등장시킨 만화로 헌재의 업무를 알리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이색 홍보전이 한창이다. 법조계 하면 떠오르던 딱딱한 세미나·공청회·토론회는 옛말이 됐다. 동영상·웹툰·만화·게임 등 친숙한 매체에서 법률용어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홍보전이 가열되면서 예상치 못한 신경전과 해프닝이 종종 벌어진다. 민간 기업에 비해 여전히 투박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법조도 서비스’라는 인식이 확산돼 홍보전은 갈수록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랩·만화·게임… ‘친숙한 법’ 변신 몸부림

홍보에 가장 열을 올리는 곳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애쓰는 대법원이다. 유튜브와 포털 사이트는 물론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 등 일부 역사에서 ‘상고법원 뮤직비디오’를 접할 수 있다. 이 뮤직비디오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2번째 영상이다. 상고법원의 당위성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친 첫 영상은 호응을 얻지 못했었다.

랩 음악으로 꾸며진 새 영상은 ‘깨고→상고→최고’로 이어지는 라임(각운)을 내세워 상고법원의 원리를 설명한다.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직접 랩 가사를 썼다. 제작에 관여한 판사는 “어떻게든 국민에게 상고법원 설치의 필요성을 쉽게 설명하고 알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도 광고를 통해 ‘업무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서울 지하철 3호선 교대역 통로에서 헌재의 커다란 걸개 광고를 볼 수 있다. 이 광고는 곤장을 맞는 형틀에 흥부가 묶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만화로 꾸며졌다. 사또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부자가 된 흥부에게 “네 이놈∼ 금은보화의 출처가 의심스러우니 모두 몰수하겠다”고 말한다. 이를 지켜보던 제비는 “흥부야, 말이 안 통하네∼ 헌법소원 내자”고 한다.



“이건 너무하네” 신경전도

과열되는 홍보전은 때로 각 기관의 신경전으로 발전된다. 법원은 헌재의 ‘흥부 광고’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불쾌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부의 재산을 몰수하는 사또의 모습이 마치 판사가 ‘원님 재판’을 하는 것처럼 비친다는 이유였다.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져도 인정하지 말고 헌재에서 다시 다투라는 뜻 아니냐”며 “헌재가 굳이 법원 문턱에 이런 광고를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헌재 관계자는 4일 “사건 당사자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라 광고 효과를 최대한 누릴 것으로 판단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대법원의 홍보전을 혈세 낭비라고 비판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17일 “판사들이 자전거 타고 홍보하기, 지하철·포털 광고하기, 엉터리 여론조사 등 상고법원 홍보에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민주사법연석회의 등은 지난 1일 법원행정처에 상고법원 관련 광고홍보비 예산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PR은 계속된다

잡음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의 홍보 열풍은 확산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국민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국가기관은 존재가치가 없다. 사법기관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민과 눈높이 맞추기에 소홀했던 법조계 나름의 반성인 셈이다. 대법원은 국민 절반가량이 용어를 들어본 적도 없는 상고법원 설치를 강행한다(국민일보 7월 8일자 1면 참조)는 비판에 직면했었다.

법무부는 지난 5월부터 ‘법무부 온라인 브리핑’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법무부 소속 현직 검사 등이 출연하는 이 코너에서는 공익신탁법과 보호수용제도, 범죄피해자 지원제도, 마을변호사제도 등이 소개됐다.

생존 경쟁에 돌입한 변호사업계에선 홍보전이 뜨겁다. 일부 변호사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법률 관련 질문에 상세한 답변을 달아주며 이름을 알린다. 강용석 변호사는 삿대질하며 고성을 지르는 듯한 모습의 ‘너! 고소!’ 광고로 유명세를 더했다. 지하철역에 걸렸던 이 광고는 서울지방변호사회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글·사진=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