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참모를 포함한 친박계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공천 룰 힘겨루기 1라운드는 허무하게 끝났다. 청와대 참모까지 공격에 가세하자 일전을 불사할 듯했던 김 대표가 청와대에 확전 자제를 제의하고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비롯해 내년 총선 공천제도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기구를 당내에 설치키로 함에 따라 봉합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려고 며칠간 그렇게 난리를 피운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특히 새누리당 내 친박 의원들과 청와대 참모의 행태가 미덥지 못하다. 우선 솔직하지 않다.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전략공천 문제에 대해 그들은 “국민은 좋은 정치를 해줄 사람을 원한다”면서 전략공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말은 옳다. 하지만 듣기에만 그럴싸할 뿐이다. ‘좋은 정치인’ 발굴이 아니라 ‘친박 확장’을 위해 김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는 건 시중에서조차 상식이다. 내년 총선을 통해 좀 더 많은 친박 인사들을 국회로 진출시켜야 박근혜정부 임기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고 나아가 조기 레임덕을 차단할 수 있는데, 상향식 공천이 시행되면 전략공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김 대표를 겨냥해 일제히 포문을 연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에 내리꽂을 친박 후보자들 명단까지 나돌고 있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정치 신인들보다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한 제도여서 야당이 정치 신인들을 전략공천할 경우 총선에서 패할 것이라는 친박계 주장의 이면에도 ‘친박 확장’이 있을 것이다. 친박계가 진솔해졌으면 좋겠다.
전략공천의 폐해는 널리 알려진 상태다. 국민을 위한 정치 대신 공천권을 쥔 실세를 위한 정치, 패거리 정치의 주요인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까닭은 이 때문이다.
친박계의 ‘반기문 대망론’은 또 뭔가. 박 대통령의 유엔 방문 이전부터 친박 의원들 사이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훌륭한 대통령감”이라는 얘기가 솔솔 나오더니 박 대통령이 유엔 방문 중 반 총장을 7차례나 만난 이후엔 노골적으로 거론하는 분위기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검증이나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기 전에 반 총장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후다닥 띄울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들린다.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박계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언행을 종합해보면, 여권 내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김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반 총장 카드를 꺼내들었을 개연성이 크다. 김 대표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반 총장을 김 대표 견제 수단으로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김 대표를 찍어내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까지 김 대표를 퇴진시킨 뒤 친박계 당 대표 주도하에 총선을 치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구상(構想)하는 건 자유이지만 친박계는 자신들의 처지부터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국회의장 경선, 대표 경선, 원내대표 경선 등 당내에서 치러진 네 차례 선거에서 연패했다.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당심(黨心)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힘을 과신했다가는 되레 낭패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문민정부 이래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을 창출한 예가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으로 정권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신·구 권력은 늘 마찰을 빚었다. 정권재창출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재권력인 친박계가 행여 미래권력을 만들겠다는 심산(心算)이라면 버리는 게 낫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친박계 미덥지 못하다
입력 2015-10-05 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