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자의 나이 서른하나. 생활고는 지독했고 삶은 팍팍했다. 갑갑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20대 초반부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며 돈을 벌었지만 프리랜서 신분이었기에 삶은 언제나 불안정했다.
“돈이 없었어요. 어느 날은 먹을 게 하나도 없더군요.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냉장실은 물론이고 냉동실까지 텅텅 비어 있었어요. 냉장고 앞에서 울면서 기도했죠. 이 상황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너무 궁핍해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 친구 자녀의 돌잔치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수중에는 1만원밖에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십자가를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다. 여자는 나무판에 못을 박았다. 못대가리가 십자 모양으로 모여 십자가가 되는 ‘못 십자가’의 시작이었다.
못 십자가를 만든 사람은 김효정(44·서울 삼일교회) 집사다. 그는 목공이나 조각을 공부한 경험은 일천하지만 개성 넘치는 작품 세계로 명성을 얻었다. 지난 1일 서울 명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집사는 “십자가를 만들며 산 세월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못 십자가, 예수님의 아픔을 담다=김 집사는 서울 중구 남산동 주택가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부모는 불교 신자였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건 2000년부터다.
“꿈에 예수님이 나왔어요. 예수님의 재림 장면이 펼쳐졌는데 정말 판타스틱하면서 리얼하더군요. 그 꿈을 꾼 뒤에 교회에 갔는데 금방 신앙이 생기더군요. 기도를 하는데 등허리에 땀이 줄줄 흘렀어요. 누군가가 뒤에서 안아주는 기분이었죠(웃음).”
김 집사가 십자가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다양한 소재 중 ‘못’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예수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못 십자가를 제작하기 시작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시절이었어요. 오래 전 예수님이 겪은 아픔은 어느 정도였을까 궁금해지던 시절이었죠. 나무에 못을 박으면서 내 마음에 쾅쾅 울려 퍼지는 예수님의 음성을, 그분이 느꼈을 고통을 짐작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김 집사는 가로 9㎝, 세로 25㎝ 크기의 못 십자가 100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예수님의 아픔이 담겨 있는 듯한 못 십자가를 받아든 이들은 크게 기뻐했다.
주님의 은혜를 실감한 건 이 무렵 ‘1000일 새벽기도’를 시작하면서다. 그는 매일 새벽 뜨겁게 기도했다. 그리고 못 십자가는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김 집사의 못 십자가는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십자가 구입을 의뢰하는 주문이 이어졌다.
“나무에 못을 박을 때 힘을 주면 나무가 갈라집니다. 최대한 힘을 빼야 해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임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든 못 십자가가 800개는 넘을 거예요.”
김 집사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틈틈이 십자가를 제작했다. 십자가 작가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었다. 난치병 등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못 십자가를 받아들고 주님을 만난 것처럼 기뻐한 분들이었어요. 그때마다 십자가를 만드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게 되더군요(웃음).”
◇십자가,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김 집사의 십자가 사랑은 못 십자가 제작에만 그치지 않았다. 일반적인 ‘나무 십자가’ 등도 여러 점 만들었다. 2010년에는 인쇄물과 주얼리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선물플러스’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디자인 작업의 주된 테마가 십자가다. 김 집사는 십자가를 담은 반지나 목걸이, 십자가를 소재로 삼은 선교행사 포스터 등을 디자인하고 있다.
“십자가를 테마로 삼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계속 나오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답은 새벽기도에 있어요. 새벽기도를 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디자인의 ‘완성본’이 머릿속에 딱 찍혀요. 저에게 창작의 고통은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영감을 작품으로 완성하는 기쁨은 꿀처럼 달죠(웃음).”
김 집사는 강원도 동해 등지에 있는 군부대 교회에 십자가를 보급하는 일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힘든 군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국군 장병들이 십자가를 통해 주님을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살려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리고 있더군요. 이런 게 바로 주님의 은혜, 십자가의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⑭ ‘못 십자가’ 작가 김효정 집사
입력 2015-10-05 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