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가와 연극 ‘해변의 카프카’ 한국 온다

입력 2015-10-05 02:15
일본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소설을 무대화한 연극 ‘해변의 카프카’가 사이타마예술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니나가와 특유의 스펙터클한 무대가 관객을 압도하는 이 작품은 세계투어의 일환으로 11월 서울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호리프로 제공
일본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막이 오른 뒤 3분 안에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연출은 여전했다.

4일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내린 연극 ‘해변의 카프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의 역량이 응축된 작품이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2011)와 ‘무사시’(2014) 내한공연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니나가와는 무대 위에 이미지를 폭포처럼 쏟아냈다.

이 작품은 한국에도 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하루키의 장편소설 가운데 무대화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이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질 경우 원작의 메시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판권을 잘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던 원작은 15세 소년 카프카의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담았다.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혹독한 저주를 피해 가출한 카프카의 모습이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연상시킨다. 소설은 꿈과 현실의 틈에 자리한 미궁 속에서 방황하며 성장하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권위 있는 토니상 수상자인 미국 극작가 프랭크 갈라티가 2008년 각색한 대본은 방대하고 철학적인 원작을 해체한 후 중요한 에피소드를 조합함으로써 저자의 의도를 더욱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니나가와는 23개의 거대한 투명 아크릴 상자를 이용해 드라마를 전개시켰다. 책들이 가득한 도서관이나 깊은 숲 속 이미지도 완벽하게 무대 위에 구현하며 관객을 압도했다.

2012년 니나가와 연출로 초연된 이 작품은 지난해 앙코르 공연 후 올해 세계투어를 진행 중이다. 5월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 7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 9월 17일∼10월 4일 일본 사이타마예술극장, 10월 30일∼11월 1일 싱가포르 에스플라나다드극장을 거쳐 11월 24∼28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미국과 영국 공연에서 “철학적인 모험담을 감각에 호소하는 스펙터클로 그려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일본 공연에서도 기립박수가 10분 넘게 지속됐다.

작품은 높은 완성도 외에도 올해 80세를 맞은 니나가와의 투병으로 더 주목을 모으고 있다. 사이타마예술극장과 분카무라 시어터의 예술감독을 20년 가까이 역임하고 있는 니나가와는 명실상부한 일본 연극계의 1인자다. 특히 가부키 등 일본 전통예능 기법을 활용한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은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연간 10개 안팎의 작품을 올릴 정도로 정력적으로 활동해 온 그는 지난해 11월 홍콩 공연에서 심장질환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휠체어를 타고 코에 산소흡입용 튜브를 낀 채 연극 연습을 지휘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니나가와는 여전히 코에 튜브를 끼고 있었고 체중이 많이 빠져 매우 핼쑥한 모습이었다. 당초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뤄지지 못했다. 내년 2월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한 연극 ‘니나의 솜’을 내놓을 계획이다.

사이타마=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