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일본의 보통국가화 읽기

입력 2015-10-05 00:20

국민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안보법안을 강행 처리함으로써 일본은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가 되었다. 전 세계 국가들이 전쟁이 가능한 국가임에도 왜 유독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우려할까. 전쟁은 ‘자위전쟁’ ‘제재전쟁’ ‘침략전쟁’ 등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자국 영토를 외부 침략으로부터 지키는 ‘자위전쟁’, 침략전쟁을 일으킨 국가로부터 ‘힘에 의한 평화’의 회복·유지를 도모하는 유엔의 군사적 활동 즉, 세계평화의 공공제적 수단인 국제연합군·PKF(평화유지군)·다국적군에 의한 ‘제재전쟁’, 한 국가가 자국의 신념·주장을 관철하려고 자의적 판단에 근거해 군사력을 권력 외교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침략전쟁’ 등이다. ‘침략전쟁’을 강하게 금지하고 있는 유엔헌장도 ‘자위전쟁’과 ‘제재전쟁’은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이 침략전쟁을 할 수 없도록 헌법 9조 제정을 강요했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되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를 창설하도록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를 압박했다. 요시다 총리는 국민의 반대를 이유로 헌법 개정을 거부하고 ‘전수방위(자위전쟁)’로 한정하는 경무장(輕武裝)과 경제우선 노선의 레일을 깔았다. 그러나 요시다의 미·일 안보조약의 과도한 불평등성에 대한 우익들의 비판은 강렬했고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겼다. 기시의 퇴진 이후 요시다의 후계자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요시다의 정책을 ‘요시다 독트린’으로 승화시켜 정착시켰다.

그런데 경제대국화로 인해 높게 평가받던 ‘요시다 독트린’이 비판에 직면하고 보통국가로의 노선 전환을 재촉하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91년 1월에 발생한 유엔의 ‘제재전쟁’인 걸프전이었다. 일본은 미국이 요구한 자위대 파견을 거부하고 대신 130억 달러가 넘는 자금 원조를 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냉소와 무시는 극히 굴욕적이었다. ‘돈은 내더라도 피는 흘리지 않는다’거나 ‘수표 외교’라는 냉소와 ‘일국평화주의’라는 비판이었다. 일본 국민들에게 충격이었던 이유는 헌법 9조를 지키고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으로 거듭나서 두 번 다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결과가 냉소와 비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기회로 헌법개정론자들에 의해 주창되었던 보통국가화가 다수 여론의 반대로 미루어지다가 25년의 세월을 거쳐 아베 총리에 의해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그런데 보통국가화에 대해 국내외의 우려는 왜일까?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강행하려는 의도가 유엔 안보리 결의 하에 실행하게 되는 다국적군의 ‘제재전쟁’에 참가해 국제 공헌을 하는 것보다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취지와 논리모순이다. 아베 총리는 2014년 ‘안보법재간’의 집단안전보장에 관한 제언 중, 제2의 걸프전과 같은 상항이 발생해 유엔이 다국적군을 구성할 경우 90년 걸프전의 ‘굴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국적군이나 PKF에 참여할 것을 제언했던 내용을 지워버렸다. 그 이유는 ‘자위전쟁’을 넘어서는 군사력 사용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것이었음은 명백하다.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보통국가화의 의도는 사상적인 대미복종으로부터의 탈각과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군사충돌에 미군을 끌어들이는 작전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의 대가로 미국에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보통국가화를 우려하는 것은 그 의도 속에 ‘자위전쟁’ ‘제재전쟁’을 넘어서는 어떤 의도가 비치기 때문이 아닐까.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