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숭배는 잦아들고 집 로망이 뜬다. 물론 아파트는 지금도 대세다.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아파트 전셋값은 강세 중의 강세다. 부동산 거품은 꺼졌어도 부동산으로서의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파트는 지금도 많이 지어지고 많이 팔리고 많이 바뀐다.
하지만 분명 변화는 있다.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거나 ‘아파트 탈출기’ 같은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전원주택은 언제나 인기였지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가족만이 아니라 대안적 삶을 찾는 도시 탈출 가족의 등장은 새로운 현상이다. 단독주택 리모델링은 완전히 새로 떠오르는 현상이다. 오래된 것에 새로운 것을 가미시켜 아주 흥미로운 삶의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단독주택지가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될 줄이야! 게다가 한 가족용 단독주택이나 임대용 다가구주택만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사는 조합주택, 셰어하우스까지 등장한다.
집 로망은 아파트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파트 크기가 관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집처럼 사느냐가 관심사가 된 것이다. 네 가족 기준의 천편일률적인 구성이 아니라 아이 없는 집, 아이 떠난 집의 빈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는 부분임대형 아파트가 뜬다. 한옥처럼 꾸미는 아파트도 생긴다. 아파트 안에 텃밭과 마당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과감한 인테리어가 등장한다.
그야말로 집 로망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전월세난이 심각해져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을 것 같지만, 사람들은 소유하는 집이건 빌려 쓰는 집이건 집처럼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집 로망이 대세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이런 흐름이 도도해질수록 부동산으로서의 집 거품은 비주류가 될 것이다.
집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의 삶터이자 교육장이자 휴식공간이자 심리적인 원형 공간이다. 돈이 로망을 이루어주지는 못한다. 돈이 앞서면 로망은 죽는다. 집값이 떨어지는 흐름 속에서 집에 대한 로망은 오히려 새로워지는 것이다. 반갑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아파트 대신 집 로망
입력 2015-10-05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