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굿둑, 28년 만에 개방] ‘민물·짠물’ 다시 만나 낙동강 ‘웃음’ 짓는다

입력 2015-10-03 02:46
낙동강 하굿둑 전경. 작은 사진은 지난달 9일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개최된 낙동강 하굿둑 개방관련 시민 대토론회. 부산시 제공
강원도 태백시 황지에서 발원해 부산 을숙도까지 525㎞(1300리)를 거쳐 남해로 흘러가는 낙동강은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승용차로 부산에서 경남 진해로 이동하다 보면 낙동강 끝자락 을숙도에 교량 역할을 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나타난다. 사하구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을 잇는 낙동강 하굿둑이다. 이 둑은 기수역(汽水域·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의 경계선이다. 이 경계선을 중심으로 위쪽은 민물, 아래쪽은 바닷물이다. 강과 바다를 콘크리트로 막아 갈라놓은 이 구조물이 건설된 지 28년 만에 전격 개방이 결정됐다. 엄청난 국민 혈세로 건설된 낙동강 하굿둑의 개방 결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낙동강 하굿둑 건설 배경

낙동강 하굿둑 길이는 2400m에 공사비는 국비 1573억원이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었다. 1983년 3월 공사를 시작해 1987년 11월에 준공했다. 하굿둑 상부에는 4차로 도로를 건설했다.

이 하굿둑 완공으로 연 6억4800만t의 용수 공급을 할 수 있게 됐다. 상수도원의 86%를 낙동강에 의존해 온 부산이 식수난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또 경남도와 울산시 등도 각종 용수를 원활히 공급받게 됐고, 4000㏊의 김해평야에서는 연간 2만여t의 식량증산 효과를 거뒀다. 그리고 강바닥에서 긁어낸 2000만㎥의 흙으로 하굿둑 주변의 개펄과 습지를 매립, 택지와 공단을 조성했다. 낙동강 하굿둑 완공 후 자동화 시스템에 의한 수문조작 장치는 유량, 수위 및 염분 함량에 따라 자동으로 개폐됐다. 이로 인해 담수호는 부산시 및 남해안 지역에 산재한 공업지역 및 연안 주민들에게 식수와 공업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했다.

또 바닷물 완전 차단으로 김해평야 농지 1만5000㏊ 중 6000㏊의 염해를 방지했다.

이밖에 준설토를 이용한 주변 연안 매립으로 330㏊의 가용 토지를 확보하는 부대효과를 얻었다. 수문의 유지보수용을 겸하는 교량은 부산 중심부로부터 서부 경남지방인 김해, 진해, 창원, 마산 방면의 교통을 원활하게 해 남해 연안의 관광 개발을 촉진시켰다.

낙동강 하굿둑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간다. 당시 정부는 낙동강 유역 수자원 개발 가능성을 조사해 안동·합천·임하 등 3곳에 댐을, 낙동강하구에는 둑을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설계는 네덜란드 네데코, 공사는 현대건설이 맡았다. 중동 특수가 끝난 뒤 새로운 사업 대상지를 찾다가 하굿둑이 추진됐다는 설도 있었다.

준공 후 문제점과 개방 논쟁

낙동강 하굿둑은 준공 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개방 논쟁에 휩싸였다. 낙동강 물이 하굿둑에 막히면서 기수 생태계가 파괴되고 강바닥은 무산소 상태로 죽어갔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폐사하고 4대강 사업 이후에는 강물 정체 현상이 더욱 심해져 녹조류 번식까지 이어졌다. 하굿둑 건설의 핵심 이유였던 식수원 취수마저 영향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발과 환경이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건설 전부터 시민·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던 낙동강 하굿둑은 개방 논쟁이 심화됐다.

낙동강 하굿둑은 우리나라 환경 역사에서 ‘획기적’ 구조물이다. 첫 환경영향평가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비용과 편익 분석에서 환경 비용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나라에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1년이다. 앞서 1977년 환경보존법이 제정됐다. 낙동강 하굿둑은 환경영향평가를 받은 첫 대형 토목공사의 영예를 갖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에 큰 영향을 주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그 영향을 미리 평가해 환경 파괴적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 한다. 낙동강 하굿둑은 환경영향평가 첫 대상이라는 영예를 갖고 있지만 졸속이었다는 불명예도 함께 안고 있다.

졸속 평가라는 비판은 ‘환경비용’이 제대로 계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굿둑 건설 비용으로는 사업비만 포함됐다. 환경 가치는 빠졌다.

하굿둑에 반영되지 못한 환경가치에 대해 부산발전연구원 신성교 선임연구위원은 “한마디로 기수역 파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자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시민·환경단체들이 하굿둑 개방운동에 본격 나섰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낙동강하구기수생태계복원협의회는 지난달 9일 부산시청에서 전문가와 농어민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낙동강 하굿둑 개방 시민 대토론회’를 열고 국회 방문 등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낙동강 살리자”… 전격 개방 결정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달 23일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2025년 하굿둑을 완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서 시장은 “30여년간 계속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하며 그 중심에 낙동강을 끼고 사는 부산시민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 시장은 이어 ‘2025년 완전 개방’ ‘2017년부터 점진적 개방’ ‘2025년까지 공업용수 취수원과 식수 취수원 이전’ ‘정수시설 개선’ ‘농업용수 염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 등 하굿둑 개방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는 “중병이 들어가는 낙동강을 이대로 내버려두면서 낙동강 시대를 열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낙동강을 살리고 지금부터 부산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개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시 상수도사업본부에 실무기획팀(TF)을 두고 농민과 어민, 공업용수를 사용하는 제조업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환경부와 국토부 등 중앙정부에 대해 “하굿둑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상수원 오염, 환경 생태계 파괴 등 부산시민의 희생을 방치하는 낙동강 정책을 과감히 바꿀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낙동강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울산시, 경남도 등에도 “부산·울산·경남은 낙동강을 함께 나누면서 발전해온 공동체”라며 개방과 관련한 광역협의체 참여와 개방으로 말미암은 공동 피해 조사와 대책 수립을 제안했다.

시민·환경단체들은 “하굿둑 개방 결정은 고리 1호기 원전 폐로와 함께 환경 복원을 위한 역사적 결단”이라며 “이 같은 결정이 계획대로 추진되도록 이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