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건씩 총기난사 … “정치가 달라져야 살인 멈춘다”

입력 2015-10-03 02:38
1일(현지시간)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미국 오리건주 로즈버그의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구조팀이 희생자를 옮기고 있다. 이날 총격 사건으로 범인을 포함해 10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했다. AP연합뉴스
크리스 하퍼 머서
미국 오리건주 소도시 로즈버그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대학)에서 1일(현지시간) ‘묻지마 총격 사건’이 벌어져 범인을 포함해 10명이 죽고, 7명이 다쳤다. 올해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다. 범인은 대학 근처에 살던 크리스 하퍼 머서(26·작은 사진)로 현장에서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정치권이 총기 규제를 방치하면서 ‘묻지마 살인’이 일상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다.

◇“기독교인이냐” 묻고는 총질=이날 오전 10시30분쯤(현지시간) 미 북서부 오리건주 로즈버그의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 권총 세 자루와 자동소총 한 자루로 무장한 머서가 총을 쏘면서 스나이더홀 강의실로 난입했다. 놀란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한 여학생은 “문을 닫아”라고 외치며 강의실을 뛰쳐나가다 총을 맞고 쓰러졌다.

머서는 충격에 빠진 학생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운 뒤 “기독교인이냐”고 물은 다음 “그렇다”고 하면 “좋아, 너희들은 기독교인이니까 1초 뒤에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뒤 사살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또 “아니다”라고 하면 다리에 총을 쐈다. 인근 강의실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마이크 매티오 교수는 총소리를 듣는 순간 20여명의 학생들을 재빨리 뒷방으로 피신시켜 피해를 줄였다. 머서는 경찰과 대치하다 10시47분쯤 사살됐다. 육군에서 근무한 전력이 있는 머서는 정신질환을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 데이트 사이트에 자신은 종교가 없고 혼혈이며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라고 소개했다. 또 이 사이트의 ‘조직화된 종교를 싫어하는 모임’에도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평소 총기에 심취했으며 외톨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 8월 미 버지니아주에서 발생한 ‘생방송 기자 총격사건’의 범인을 언급하며 “그처럼 고독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더 크게 주목받는 것 같다”는 글을 인터넷에 남기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증오로 가득찬 성난 젊은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묘사했다. 사건 전날 밤 온라인 게시판에 “만약 북서부에 있다면 내일 학교에 가지 말라”는 익명의 글이 올라와 그가 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로즈버그는 인구 2만2000여명의 작은 도시로 실업률이 높고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이다. 엄프콰 칼리지 재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37세로 대부분 새 직장을 얻기 위해 기술을 익히려고 등록한 만학도이다.

◇오바마, “‘묻지마 살인’, 일상이 돼버려”=오바마 대통령은 사건 직후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묻지마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 나라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나, 무너지는 다리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왜 총기 규제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가”라고 개탄했다.

미국에서는 올 1월부터 7월까지 221일 동안 210건의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거의 매일 한 건씩이다. 지난 6월 17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흑인 교회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신자 9명이 목숨을 잃었다. 7월 16일에는 테네시주에서 현역 군인 5명이 무슬림 청년의 총격에 희생됐다. 같은 달 23일에는 루이지애나주의 한 극장에서 백인 남성이 총을 난사해 2명이 숨졌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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