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결혼식… 전날 구속된 신부 대신 언니가 웨딩드레스

입력 2015-10-03 02:32

지난 3월 인천의 한 예식장에서 ‘어색한’ 결혼식이 열렸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주례 앞에 선 신부는 왠지 안절부절못했고 신랑과 양가 가족도 침통한 표정이었다. 혼인서약과 주례사를 마치고 서둘러 끝낸 이 결혼식의 신부는 ‘대타’였다. 식장에 올 수 없었던 여동생을 대신해 언니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진짜 주인공인 동생 A씨(27)는 바로 전날 구속됐다.

A씨는 한창 결혼자금을 마련 중이던 지난해 10월 고교 동창(26·여)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은행에서 돈을 대신 찾아주면 일당 5만원을 준다는 말에 ‘보이스피싱 인출책’이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9차례 약 9000만원을 인출해 필리핀의 총책 ‘민 사장’에게 송금했다. 일당 5만원에 눈이 멀어 저지른 범죄는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A씨가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사기당한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인출책 활동은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 조직을 추적해온 경찰은 지난 3월 국내 조직원 45명을 전원 검거했고, 같은 달 21일 A씨 등 10명을 구속했다. 이날은 A씨의 결혼식 전날이었다. 갑자기 결혼식을 취소할 경우 신랑 측이 큰 망신을 겪게 되자 신부 측이 A씨의 언니를 대타로 내세워 식을 치른 것이다.

예비신랑이 법원에 탄원서를 내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강인철)도 2일 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A씨와 예비신랑은 파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