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짜 맞아 더 ‘핫’해졌다… 두 거장 신작이 궁금해!

입력 2015-10-05 02:34
연극 ‘백석우화’는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이 천재시인 백석의 시와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형태의 기록극이다. 지난 8월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대전문화예술의전당과 공동 제작해 ‘대전코미디페스티벌’에서 초연했을 때 모습. 극단 연희단거리패 제공
이윤택(63)과 박근형(52).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양대 극작가를 꼽으라면 두 사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윤택의 ‘오구’ ‘어머니’ ‘바보각시’ ‘문제적 인간 연산’ ‘시골선비 조남명’ ‘혜경궁 홍씨’와 박근형의 ‘청춘예찬’ ‘대대손손’ ‘경숙이 경숙 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등은 한국 연극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수작들이다. 각각 극단 연희단거리패와 극단 골목길에서 연출도 병행하는 둘의 작품은 늘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모았다.

올 가을 이윤택과 박근형은 연극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작품이 아니라 검열 논란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에 지원했던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2년 전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담은 작품 ‘개구리’로 인해 배제됐다는 의혹이 녹취파일을 통해 제기됐다. 아울러 예술위 문학창작기금 분야에 지원했던 이윤택의 ‘꽃을 바치는 시간’은 심의위원들에게 100점을 받아 희곡 분야 1위에 오르고도 탈락했다. 이윤택은 지난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연설을 한 바 있다.

연극계는 문체부와 예술위의 잇단 ‘검열 의혹’에 분노하고 있다. 연극 관련 단체들의 성명이 일제히 쏟아지는 등 집단적 반발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처럼 문학과 영화 등 문화계 전반에서도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윤택과 박근형의 신작이 나란히 서울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우선 박근형의 ‘엄사장은 살아있다’가 11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2005년 ‘선착장에서’, 2008년 ‘돌아온 엄사장’에 이은 엄사장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주인공인 엄사장은 울릉도에서 부동산업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대구와 포항을 거쳐 승승장구해 나가던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지지자들에 대한 보답으로 중국 단체여행을 간 그는 조선족 가이드와의 성추문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귀국해 다시 의정활동에 매진한다.

박근형은 원래 사회성 짙은 작품을 썼지만 ‘개구리’로 홍역을 치른 뒤엔 풍자의 강도가 더 세진 모습이다. 친일파 문제를 다룬 ‘만주전선’을 비롯해 이번 작품 역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을 익살스럽게 담았다. 극단 출신으로 요즘 TV 드라마에서 맛깔스런 조연으로 자리 잡은 엄효섭과 황영희 등이 출연한다.

이윤택이 천재 시인 백석(1912∼1996)의 시와 삶을 그린 ‘백석우화’는 12일부터 11월 1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시집과 시는 남았으나 북한에서의 행적을 알 수 없었던 백석의 삶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형태의 기록극이다.

우리 말을 가장 아름답게 살려낸 시인이라고 평가받는 백석은 친일을 거부하기 위해 한때 절필했고,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시를 쓰지 않기 위해 번역에 몰두했다. 고향이 평안도라는 점에서 월북 시인은 아니지만 남한에서 그의 책은 오랫동안 출판 금지 대상이었다. 정작 그는 북한에선 사회주의 사상에 투철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집단농장에 유폐됐다.

연극은 집단농장에서도 낙천적인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 자연과 벗하며 살았던 시인의 모습을 추적한다. 이윤택이 그동안 연산, 장영실, 혜경궁 홍씨, 정조, 화가 이중섭 등 역사 속 실제 인물을 입체적으로 다룬 수작을 여러 편 발표했던 만큼 이번 작품 역시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 백석의 향토적인 시들이 판소리, 정가, 발라드 등의 음악으로 구성돼 나온다. 이자람이 작창을 맡았고, 백석 역의 배우 오동식을 비롯해 김미숙, 이승헌 등이 출연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