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칸막이’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금융 당국은 핀테크(금융+IT) 및 비대면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은행·증권·보험 업무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복합점포가 속속 들어서고, 점포 없이 비대면거래로 운영되는 인터넷전문은행 출현도 머지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금융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칸막이 제거 과정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금융사들이 자발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융합과 경쟁의 시대=지난 1일 금융위원회에 카카오뱅크·KT·인터파크 컨소시엄 등 3곳이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신청한 것은 핀테크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뜻한다. 모바일 메신저 업체, 전자결제 사업자, 전자상거래 사업자, 은행, 증권사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뭉쳐 기존 은행에서 하지 못한 혁신적인 자산관리서비스나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맞춤형 대출을 선보인다면 은행권 내부의 역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융합의 움직임은 금융지주사들이 복합점포 영업을 강화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지난 8월 초 하나생명과 농협생명이 각각 서울 강남과 광화문에 있는 은행·증권 복합점포에 입점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는 KB생명·손해보험이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은행·증권 복합점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은행·증권의 자산관리서비스뿐 아니라 자동차보험 등 각종 보험상품 접근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는 30일부터 시행되는 계좌이동제를 앞두고 은행 간 경쟁도 불붙고 있다. 기존 주거래은행 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면 연결된 각종 자동이체 항목(공과금 등)도 일괄 이전되기 때문에 ‘충성고객 확보’ 경쟁이 벌어진 탓이다. 대부분 은행들이 입출금통장·적금·대출·카드 상품을 패키지로 묶은 상품을 출시하고, 자동화기기 수수료나 금리 우대 혜택을 주는 파격적 조건을 내걸고 있다.
◇칸막이 제거가 금융개혁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금융업권 내외부의 칸막이를 없애고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정책방향이 소비자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준다는 점에선 별로 이견이 없다. 문제는 서비스의 지속성과 확산 가능성 여부다. 신설되는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장기고객을 확보하고, 수익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 시험대를 통과해야 한다. 계좌이동제의 경우에도 은행 간 출혈경쟁이 벌어지면 과도한 수수료나 금리 혜택으로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복합점포는 방카슈랑스 규제에서 판매가 금지된 보장성보험도 허용하고 있어 지나친 은행권 위주 영업이라는 지적과 함께 불완전판매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규제완화 이후에 내놓을 밑그림이 필요하다고 본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2일 “금융 당국이 금융개혁의 본질적인 문제보다 생색내기식 정책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향후 10년간 금융업 부가가치를 전체 산업의 1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던 약속(‘10-10 밸류업’)을 되돌아볼 때”라고 꼬집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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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03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