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무능 철밥통 깨기

입력 2015-10-03 00:10

수니파 무장조직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가 이라크 북부 최대 도시 모술을 장악한 것은 지난해 6월 10일. 전날 공격을 시작해 단 이틀 만에 점령했다. 당시 ISIS 병력은 1500여명, 모술의 이라크 군은 2만여명. 미군이 지원한 최신 무기를 갖췄던 이라크 군은 10분의 1도 안되는 테러 집단에 패배했다. 1년 동안 조사한 뒤 이라크 의회 조사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보고서는 패배 원인이 정부와 군 핵심 인사들의 무능과 오판이라고 결론지었다. 심상치 않은 ISIS 움직임에 대한 정보보고를 확인조차 하지도 않았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무능, 무책임, 무사안일이 나라를 잡아먹은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선왕은 300명이 생황(笙簧·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을 합주하는 것을 즐겨 들었다. 어느 날 남곽(南郭)이라는 자가 찾아와 자기도 왕을 위해 연주를 하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다. 왕이 크게 기뻐해 상을 내리고 그를 300명 연주자 속에 포함시켰다. 선왕이 죽고 아들 민왕이 즉위했는데, 그는 독주 감상을 좋아했다. 그러자 남곽은 갑자기 도망쳤다. 생황 연주 실력이 없었는데 300명 속에서 시늉만 냈던 것이다. 무능한 자가 유능한 사람들 속에 숨어서 대접만 받는다는 고사다. 무능한 사람을 뜻하는 남곽처사(南郭處士)의 유래다.

반식재상(伴食宰相)이란 고사성어도 있다. 유능한 사람을 곁에 모시고 밥을 먹는 재상이란 뜻으로, 국사를 논하고 판단할 때 늘 유능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결정했다는 당 현종 때 노회신이라는 무능한 재상의 사례에서 따왔다. 무위도식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고위직을 조롱하는 말이다.

인사혁신처가 무능 공무원을 퇴출시키기 위한 인사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연말 인사혁신처의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공무원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무사안일·철밥통(35.2%)을 꼽았다. 부정부패 등 공직윤리 결여(29.8%)보다 훨씬 많았다. 2006년에 고위공직자 퇴출 제도가 생겼으나 지금까지 퇴출자는 0명이다. 인사혁신처조차 비정상적인 제 식구 감싸기 탓이라고 분석했다. 칼집서 칼을 뽑은 인사혁신처가 뭔가 베기는 해야 할 텐데…. 이번엔 무능 철밥통을 깰 수 있을까.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