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 10년] 박원순 야심작 고가공원… ‘청계천의 교훈’ 되새겨봐야

입력 2015-10-02 02:14
지난 5월 10일 열린 ‘서울역 고가도로 개방행사’에서 시민들이 평소 자동차가 다니던 고가도로 위를 걷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고가도로를 2017년까지 공원길로 바꾸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남대문시장 상권 위축, 교통체증 악화 등을 우려한 반대 목소리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오른쪽 사진 2장은 서울시의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상상도. 국민일보DB
청계천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작품이라면 박원순 시장에겐 ‘서울역 7017 프로젝트’가 있다. 1970년에 완공된 높이 17m의 낡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17개 공원길로 바꾸는 사업이다. 서울역 고가는 2006년 정밀안전진단에서 안전성 평가 D등급을 받은 뒤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박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역 고가를 도보 공원으로 바꾸는 재활용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청계천 복원 10년의 교훈은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

청계천의 성공과 후유증

청계천은 ‘공원 녹지’로서 대성공을 거뒀다. 하루 평균 5만4000여명이 찾아 도심 속 녹지에서 휴식을 취한다. 청계천시민위원회가 서울시민을 상대로 대표적 휴식공간을 조사한 결과 경복궁 등 고궁(38.7%)과 남산타워(32.4%) 광화문(21.1%)에 이어 청계천(19.4%)이 이름을 올렸다. 서울시민의 83%는 최근 1년간 청계천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청계천을 이용하며 좋았던 점으로 ‘걷기 좋은 산책로’(4.11점/5점 만점)와 ‘도심에서 가까이 접하는 물길’(4.02점)을 꼽았다.

반면 여러 부작용도 노출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은 이 전 시장 임기 내에 완공시키려 전광석화처럼 추진됐다. 환경·문화 등 각계 시민단체들이 충분한 의견 수렴을 요구했지만 결국 임기 내에 통수식을 가졌다. 10년 동안 ‘인공 어항’이라 비판받는 생태적 측면도 사실 착공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인왕산 자락의 백운동계곡 등 청계천 상류부터 복원해 자연하천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강물을 퍼올려 물을 흐르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물을 흐르게 만드는 데만 연간 18억원이 들어간다.

복원된 청계천은 예전과 달리 직선으로 물길을 냈다. 오간수교 등 조선시대 역사가 담긴 유적들이 복원된 청계천과 위치가 맞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화계는 시간을 들여 원형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서울시는 중장기 과제로 물길을 곡선화하고 옛 유적들이 원래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검토안을 실현하려면 주변 토지 보상 등 추가적인 비용이 수반된다.

철거된 청계고가 주변 상인들은 대체 상가를 제공하겠다는 서울시 약속을 믿고 문정동 가든파이브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주 상인들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아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면서 반발한다. 복원된 청계천 주변의 도로폭이 좁아지면서 접근성이 나빠져 잔류한 상인들도 아우성이다.

‘대선주자 서울시장의 사업’이란 공통점 때문인지,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청계천 복원 당시와 비슷한 논란을 겪고 있다. 청계천 복원은 청계고가의 노후화가 심각해 안전문제가 생겼기에 추진될 수 있었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도 서울역 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시발점이 됐다. 그러나 교통·문화·상권 등 숱한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청계고가 철거 당시와 매우 흡사한 상황이다.

서울경찰청과 문화재청은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 대해 ‘교통 대책이 미흡하다’ ‘옛 서울역을 가려 경관을 해칠 수 있다’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통해 접근하는 고객이 많은 남대문시장 상인들도 상권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숱한 반대 속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하기에 속도와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청계천의 교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파리에서 배우는 교훈

센강으로 흘러드는 프랑스 파리의 작은 하천 ‘비에브르’는 청계천 복원을 결정할 당시 서울시가 참고했던 곳이다. 산업화 여파로 공장에서 나오는 오·폐수와 쓰레기가 흘러들면서 비에브르는 썩어가기 시작했다. 악취를 참지 못한 주민들은 대책을 요구했다. 1877년부터 1935년까지 50여년에 걸쳐 파리시내 5㎞ 구간을 포함해 하류 16㎞ 구간이 복개됐다. 파리시내 구간은 매립돼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세월이 흘러 2000년 시민단체 지지에 힘입어 비에브르의 파리 외곽 1.1㎞ 구간이 복원됐다. 이어 2001년 비에브르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베르트랑 들라노에 후보가 파리시장에 당선되며 복원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그러나 파리는 서울과 다른 선택을 했다. 무리하게 인공 하천을 조성하기보다는 자연 상태의 복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계획하고 밀어붙이는 대신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착공 2년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복원을 끝낸 청계천과 달리 비에브르는 파리시내 구간 공사에는 착수조차 못했다. 대신 복개 구간 중 1.295㎞의 덮개를 걷어냈다. 여기엔 자연 그대로의 물이 흐른다. 10여년의 고심 끝에 일부 물길만 열고 원상태로의 회복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

신훈 홍석호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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