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안전, 불편, 분산

입력 2015-10-03 00:52

지난달 24일 사우디의 성지 메카에서 압사사고가 일어났다. 인터넷에 속보로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만 접하고 우리나라에 또 다른 재난이 벌어졌나 싶어 깜짝 놀랐었다. 살펴보니 이슬람 성지 순례 하지 행사 중 순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일어난 사고라는 것이다.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서 나타나는 압사사고는 간혹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통로가 분산되지 않은 곳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통로가 분산되지 못하는 경우 들어가는 사람의 간격을 의도적으로 조정하여 뒤에서 밀려 덮치는 일은 없게 해야 한다.

원천적인 또 하나의 방법은 한 번에 많이 몰리는 행사를 삼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2002년 월드컵 때 경험한 것처럼 한 번에 같이하는 것이 응집력을 높여서 즐거움과 감동을 배가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이번 사고도 부주의의 문제이지 그동안 잘 진행해온 행사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약성서를 읽어보면 예루살렘이 이런 맥락의 장소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다 예루살렘에 모여서 절기 성회를 드리는 것을 상상해보라. 민족성과 신앙심을 고취시킬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결집이 크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질 때에도 힘의 결집을 위해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 제단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왕상 12:25∼29). 이번 사고 이후에 사우디와 이란이 사망자수를 두고 갈등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갈등의 배경에 행사의 주도권 싸움이 있다고 들었다.

우리도 명절이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지역으로 모여들지는 않는다. 각자 다 자신의 고향으로 간다. 평소보다 한꺼번에 이동이 많아 조심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류의 걱정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우리 민족이 단일 종교에 치중하였다면 비슷한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에 있어서는 조상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안전을 유지하려면 불편하게 된다. 불편을 못 참고 나만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동조자가 생기고 사실 상황은 더 불편해진다. 그리고 종합체육관처럼 통로가 분산될수록 안전하다. 고속화도로로 잘못 진입했다가 차가 막히지만 나갈 수도 없는 경우 혹은 중간에 빠져나가서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 경우가 있을 것이다. 대안이 없는 한 가지만의 고수는 종종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서울시에서는 최근 자전거겸용도로를 추진하고 있다. 필자가 활동하는 신촌 지역 주변에 못 보던 도로 표식이 갑자기 많이 생겨났다. 차도의 하위차선을 자전거와 같이 쓰는 도로로 지정한 것이다. 걱정이 앞섰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넘어져 지나가는 차에 치어 사망한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기존의 흐름이 느려지고 사고의 위험도 높아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분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별수 없다면 우리는 불편을 감수하고 조심하고 느려져야 한다. 많은 경우가 그래왔다. 없던 노조가 생길 때도 그랬고, 비중이 크지 않던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날 때도 그랬다. 교회도 신앙의 핵심이 아닌 요소로 그동안 고려하지 않은 문제가 교회 안에 들어올 것이다. 압사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 원장>